2-9 2021년 가을 지혜롭고 따뜻한, 정 많은 유나 선생님
2018년도 3학기를 딸들은 아부다비에 와서부터 다니던 학교와 어린이집을 그만뒀다.
학교를 옮기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아부다비 국제학교의 수가 전세계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많다.
미국계, 영국계, 캐나다계, 아랍계 등등 입맛대로 고를 수 있을 것 같지만 인기가 많은 학교는 대기도 길고 면접을 보고 테스트를 거쳐도 불합격 통지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집에서 가깝고 평판 좋고 결정적으로 딸들을 받아주는 학교를 찾고 있었다.
자녀들이 처음 다닌 미국 학교 GAA는 처음 국제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학교였다.
규율이 엄격한 하고 질서를 중요시하는 정서의 한국의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한국 학생들에게 GAA는 학생들의 흥미와 창의력을 길러줄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제공했다.
학교에서는 프로젝트 수업을 성격의 Theme day를 자주 했는데, Crazy hair day, blank T shirt day, Odd socks day.. 등등 학생들이 즐거워할만한 이벤트가 가득했다.
GAA는 내 아이의 첫 학교로서는 좋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활동이나 학습에 있어서 자율성이 많이 부각되다보니 각자의 역량에 따라 할수 있는 만큼만 하고 싶은 방식이어서, 이미 영어가 익숙하고 자기 표현이 자유로운 아이들에게는 유연하고 창의성을 키워주는 방식이었겠지만 이제 영어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는 조금 더 세심하고 개인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였다.
특히나, 아부다비의 국제학교에서 학교나 담임교사와의 의사소통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한국 학교는 학부모에게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학부모가 학교에 접촉하는 것이 간편하다.
학부모는 학교로 쉽게 전화를 걸어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담임 교사의 연락처가 공개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부다비의 국제학교에서는 담임교사의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전화는 리셉션 한 군데이다.
리셉션은 학부모가 학교와 소통을 원하는 경우 중간 역할을 담당하여 업무 담당자와 연락을 한 후 해당 학부모와 다시 소통한다.
사안이 급한 경우 학부모가 담당자의 이메일을 제공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메일을 통한 소통은 시간이 걸린다. 학부모가 담당자와 직접 통화를 하거나 학교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학교에서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주 긴급한 경우가 아닌 경우에는 리셉션을 통해서만 정보 교환이 가능하다.
학교의 이러한 소통방식이 학부모로서 매우 불편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급하지 않은 일은 기다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교사의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시스템이라 여겨졌다.
결국 교사가 학부모와 대응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학생들에게 집중하는 에너지와 시간이 많아지고 그것은 수업의 질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 들어서면 학생들은 자신의 일을 책임감있게 해내야했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영역이 줄어들면서 학생들은 더 자립적으로 변해갔고 학교는 아이들과의 결속을 더 단단히 할 수 있었다.
학부모는 1년에 한 두번, 학부모초청 수업이나 오픈클래스 등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치뤄지는 형성평가, 단원평가 따위를 집에 들고와 부모님 확인을 받게 하는 일은 없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정확하게 알수 없는 점이 아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학교를 신뢰하게 되고, 자녀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게 되어 학교와 가정의 각자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으로 학생들은 자신의 자리를 잘 찾아갔다.
유나선생님은 아미티학교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이기도 했고 아이들을 같은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이면서도 가끔 인생 이야기도 나누었던 나의 멘토셨다. 호탕하고 밝은 에너지를 갖고 계셨고 어떤 문제든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셨다. 상황판단이 뛰어나셔서 여러가지 요소를 단박에 파악하여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녀는 내가 아미티에서 처음 근무하게 되어을 때에도 A부터 Z까지 다 알려주셨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알려주는 건 아주 다른 일이다. 교사로 지내면서 그것을 더 지독하게 느낀다. 내가 아는 것을 상대가 알게 하려면 상대를 머리로 냉철하게 파악해야 하고 마음으로 따뜻하게 배려해야 한다. 유나선생님은 그것을 매우 잘 알고 계셨다. 처음 영국학교에 근무하는 어설픈 내가 당황하지 않도록 학교의 시스템과 절차를 나에게 자세히 알려주셨다. 그러면서도 내가 문화적 차이나 언어적 어려움으로 힘들어 할때 또 사람 관계로 부딪힐 때는 옆집 언니처럼 다정하게 내 말을 잘들어주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혹여나 내가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오해로 힘들어하면 용기있게 오해를 바로잡아주시기도 했다. 유나선생님이라는 보호막으로 낯선 영국학교의 환경과 시스템과 분위기는 나에게 도전해볼만한 과제가 되었다.
유나선생님은 또 무척 좋은 엄마였다.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늘 고민하셨고, 그런 부분을 적용하여 자녀들이 달라지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유나선생님 댁네 아들들은 내 딸들보다 서너살 위였는데 의젓하고 다정한 아이들이었다. 그녀의 아들들은 유나선생님의 교육철학에 힘입어 학업적으로 우수했다. 교내 학업우수상을 휩쓸고 다녔다. 하지만 유나선생님 집에서 만났을때에는 아이들을 함께 영락없는 순수한 모습으로 엄마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곤했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시고 대학원에서 우주공학을 전공한 유나선생님의 교육철학은 이러했다. 일. 부모가 늘 함께한다. 좋은 것을 보고, 느끼는데 있어 부모가 그 길을 알려주고 함께한다. 그래서 유나선생님은 중,고등학생이 된 자녀들을 데리고 아직도 다양한 체험을 하고, 박물관이나 전시회 등에 데려가거나 여행을 다녔다. 이. 전과목 공부는 책으로 한다. 유나선생님은 자녀들이 유독 책을 많이 읽게 하셨는데 자녀들이 한자만화책부터 경제, 인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보게 하셨다. 유나선생님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억지로 읽지 않고 재미로 읽는 아이들로 컸다.
유나선생님과의 교류로 나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녀의 자녀교육철학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삶의 가치관이었다. 부모는 자녀에게 일생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는 자녀들에게 어떠한 유산보다도 멋진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사는 신념을 남겨주고 싶었는데. 유나선생님을 보며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녀를 보며 부모가 보인다. 유나선생님은 그 자체로 나의 교육롤모델이었다.
그런 유나선생님게서 어느 날 한국으로 귀임날짜가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유나선생님이 없는 아미티라니. 나는 이제 급한 일이 있으면 누구에게 달려가야 할지, 물어야 할지 막막했다. 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나 있을지도 걱정되었다. 일이야 어찌어찌 되겠지만 또 마음이 힘들땐 어떻게 해야힐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시한부 환자가 생의 남은 날들을 소중히 손꼽아 세듯 나는 유나선생님과의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는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부다비생활에서 가장 힘들면서도 동시에 나를 성장시켰던 것은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것의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끝을 생각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가까운 사람이 아부다비를 떠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의 지난 아부다비 생활을 돌아보았다. 그러면 내가 아부다비에 살면서 하고 싶었지만 여태 하지 못한 것은 없는지, 지금 당장 무엇에 집중해야할지 또렸해졌다. 그렇게 남은 날들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귀임 날짜가 돌아오면 그들과 지냈던 날들을 떠올려 보고 아쉬움없이 보내려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생의 마지막도 이러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아파트 해변 선베드에 누워 생각했다. 생의 마지막에 내가 아쉬워할게 뭐가 있을까? 오늘 그것들 중 내가 할수 있는건 뭘까?
그러자 복잡한 머리를 비집고 선연히 드러나는 것들이 있었다. 가족에게 순간 순간 함께하는 모든 때에 아낌없이 사랑을 줄 것, 내 오늘 하루 발 딛는 것, 눈길 가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음미하고 그 안에서 평화와 사랑을 찾을 것, 무엇보다 생을 아낌없이 불태우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머물 것. 나중에는 이 몇가지가 수학의 정석을 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공식처럼 자연스럽게 머릿 속에 그려졌다.
아부다비가 가르쳐 준 생의 공식은 그때도 지금도 유효하다. 유나선생님을 떠나보내기 전 그녀의 집에서 식사를 기억한다. 그녀는 나를 위해 자몽하이볼과 연어카나페를 만들어주셨다. 우리는 그것을 앞에 두고, 지난했던 아부다비에서의 적응과 고군분투했던 시간들, 그리고 선물처럼 지금 매일 다가오는 날들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집 창밖으로 해가 저물고 있었고, 나는 그녀와 그렇게 저녁을 보내는 하루가 참으로 감사하고 벅찼다. 그녀는 떠나기 전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공대출신이었던 유나선생님은 영어도 아부다비에 와서 제대로 공부했다고 하셨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당시 그녀의 영어는 부족함이 없었고, 이메일로 화상회의로 영국학교의 직원들과 소통하고, 영어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에서 도움을 줄 만큼 유창했다. 하지만 그녀는 영국학교에서 근무하기 위해 아미티에 일하면서도 영국영어시험인 아이엘츠를 준비하여 영어공부를 제대로 하게 되었다고 했다. 몇 번의 방학을 불태워 원하는 성적을 얻었고, 그것으로 두바이에 있는 교육대학원에 갈 성적까지 만들었었다. 결국 그녀는 교육대학원 대신에 가족을 택하고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녀의 거침없고, 당당하고, 진솔하고, 열정적인 면모는 나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참 솔직하고 따뜻한 살만한 곳이 될 것같았다. 늘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녀가 보여준 삶의 방식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 그녀 덕분에 나는 제이나의 도마뱀과 여름 풀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수 있었다. 오늘 나에게도 도마뱀대신 어떤 것을 볼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질지 살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