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흔들리는 마흔을 견딘 시간, 아부다비>

영국국제학교에서 일하다


2019년 6월, 딸 아이들이 다닐 새로운 학교가 정해졌다.


AIS라고 불리는 아미티 국제 학교 (Amity international school)이다.


학교는 아부다비에서 두바이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알 바히야라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내 가족은 당시 아부다비 중앙에 자리한 알 로다지역의 리한하이츠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AIS까지는 차로 다니기 꽤 멀었댜.


집에서 차로 출발하면 130km 속도로 40분여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래도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새로 지은 건물에, 교직원들이 친절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딸 아이들의 입학을 흔쾌히 수락해준 곳이었다.


그런데 딸 아이들의 입학전형을 치르러 간 날, 나는 뜻밖의 제안을 듣게 되었다.




자녀들의 입학 테스트가 끝나고, AIS의 어드미션(입학담당) 교직원이 나에게 가볍게 말을 건넸다.



교직원(이하 교): 어머니, 영어를 잘 하시네요?


나: 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교: 혹시 이 곳 AIS에서 일해볼 생각 없으세요?


나: 네? 제가요? 저는 한국 교육부 소속이라 무급으로 봉사활동은 가능해요. 이야기를 들으니 봉사활동이라면 저도 하고 싶네요.


교: 아. 잘 되었네요. 그러면 방학이 끝나고 교장선생님과 상의 후에 메일을 보내드릴께요.




가슴이 설렜다. 당시 나는 가벼운 의사소통을 하고, 영어를 읽고 쓰는데 문제가 없는 정도의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지만 국제학교에서 일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2019년 한국에서의 여름 휴가를 끝내고 8월 말, 아부다비로 돌아왔다. 딸 아이들은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지만 기다렸던 이메일은 오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여름 휴가기간동안 AIS에서 일할 생각에 조금은 들떠 있었다. 하지만 아부다비는 한국이 아니라 일처리가 느리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AIS에서 신학기 학부모 설명회를 한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설명회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강당에 들어섰다. 꽤 많은 학부모들이 모여 있었다. 71개국 출신의 학생들이 모인 학교이니 만큼 부모들의 개성도 각양각색이었다. 설명회가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교장선생님의 인사였다. 아드리안 프로스트 교장 선생님은 원래 중고등부 교사였다가 학교 내에서 교감으로 승진했고 그리고 지금 유치, 초등, 중등을 총괄하는 교장 선생님으로 승진하신 입지적전인 인물이었다. 옥스포드에서 수학했고 전공은 수학과 음악이었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이 인삿말을 끝내며 본인의 이메일을 공개했다. 그리고 본인에게 이메일을 해야하는 경우라고 생각되면 다른 부서나 교사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연락해도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내 마음 속에 파도가 일렁였다. 그래. 교장선생님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야겠다. 내가 AIS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밝혀야겠다. 그리고 설명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후 이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CV라고 불리는 영문이력서를 그 자리에서 적어 첨부하여 즉시 메일을 발송했다. 나는 또 패기만만하게 좋은 결과가 들릴거라고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하지만 교장에게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3주 후 다시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교장으로 부터 답장을 받게 되었다.


나의 메일


Dear principal

Hi, this is Hyekyong Yu.

I previously sent a CV regarding a place in Amity school.

I was waiting for your reply.

May I get to know if I can have an interview later?

Sorry to remind you again in this busy time of the year.


Kind regard



교장의 답장


Dear Ms Yu

We have not forgotten you but at present, we were looking to determine what we had available. We are not sure if we have a teacher role or a teaching assistant role to offer yet as it is dependent on other internal moves within the school. I suggest that we interview you for both and then determine what we can offer you later.


Ms Budod – please could you arrange an interview.


Kind regards


Adrian



나는 영어를 좋아하고 한국인으로서는 잘하는 편이긴 했지만 영국인 학생에게 영어로 전과목을 가르칠 실력은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미티 교장선생님이 교사 자리냐 보조교사 자리냐를 두고 인터뷰를 하자 했을 도때 나는 당연히 교사 자리를 탐낼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보조 교사 자리도 애매한 것이 보조 교사는 정식 교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들어와서 일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교육청에 고용된 정식 교원 자격증과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교장으로서 나에게 어울리는 마땅한 자리를 고민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Voluntary teacher(자원봉사로 일하는 교사)라는 직함을 얻었고 한국 국적의 학생들의 수업 지원을 했다. 처음에는 중등부에 속하게 되어서 중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다루는 작품,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따위를 읽고 해석하거나 영국, 미국 시인의 작품을 분석하는 것을 도와주거나 했다. 또 짬을 내어서 기본적인 영어 문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운이 좋게도 나는 그 곳에서 학생들 곁에 있으며 매우 좋은 영미문학을 접했고 그 중의 일부는 줄줄 욀 정도로 사랑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W.H Auden 의 시가 그러했고 감자를 사랑한 아일랜드의 Seamus 같은 시인의 시들이 그러했다.



문법이라기보다 영어의 규칙이라고나 할까. 영어로 말을 잘하는 학생들도 막상 영어로 문장을 이해하고 글을 쓰는 능력은 천차만별이었다. 코로나가 터졌고 학생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마이크로소프트 팀즈로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에도 함께 참여하여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곤 했다. 하지만 때로는 나에게도 영어의 장벽이 높게 느껴졌다. 인문학적 소양은 현지에서 오래 살았던 학생들보다 더 갖추고 있을지 몰라도 실제 어휘량이나 표현에 대한 이해는 학생들이 나보다 더 나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수 있는건 미리 수업을 파악하고 학생들보다 한발 앞서나가 수업시간에 다루는 작품들을 읽어놓는 것이었다. 아부다비에 이주하기 전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조금 맛봤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등장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도 나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늘 마음 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누구는 돈도 안되는 봉사활동을 왜 하냐고 했지만, 나는 첫째, 그들과 같이 고통을 나누며 도와주고 싶었고 두번째, 그 과정에서 나도 부족함을 조금씩 메꾸어가며 성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고 그 곳에서의 매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6 <흔들리는 마흔을 견딘 시간, 아부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