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부모님은 무얼하고 있었나
인생각본은 '무의식적인 인생계획(Berne, 1961)이며, 어린 시절에 작성되어 부모에 의해 강화되고 이어지는 사건들에 의해 정당화되어 결국 삶의 한 방도로 선택된 인생 계획'(Berne, 1972)이라고 한다.
유미가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유미의 부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상담심리학의 한 갈래인 교류분석에서 자아는 부모자아, 어른 자아, 어린이 자아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부모자아는 가르침을 받은 나로 불리며,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행동, 사고, 감정등이 모방학습으로 내면화된 것을 말한다.
특정한 순간에 권위적, 비판적, 보호적인 목소리가 들린 다면 그것은 부모자아에게서 나온 것이다.
어른자아는 생각하는 나라고 불리며, 지금 여기에서 바로 반응하는 행동, 사고, 감정 등으로 지식, 정보의 창고라고 한다.
어떤 순간에 이성적, 현실적, 합리적인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어른자아일 가능성이 높다.
어린이 자아는 느끼는 나라고 불리며 어린 시절 외부자극에 반응했던 행동, 사고, 감정 따위 느낌의 축적으로 의해 형성된 것이다.
어떤 순간에 본능적, 직관적, 순응적인 목소리가 들린다면 이는 어린이 자아일 것이다.
은영이가 유미에게 학교폭력을 행사했을 때 유미의 머릿 속에 들리던 첫 번째 목소리는 부모자아였다.
“네가 더 강했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야.”
“왜 도망쳤어? 맞서 싸웠어야지.”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니까 만만하게 보이지.”
“왜 가만히 있었어? 가서 바로 말했어야지.”
“네가 분위기 파악 못 해서 그런 거잖아.”
“이런 일도 못 견디고 뭘 하겠다는 거야?”
“창피한 줄 알아야지.”
“이 일로 부모 얼굴에 먹칠했어.”
“다른 집 애들은 잘만 하는데 넌 왜 이 모양이야?”
“너 때문에 내가 학교 가는 것도 싫다.”
“네 친구는 이런 일 겪은 적도 없다더라.”
“넌 왜 항상 문제에 끌려다니니?”
“동생은 잘만 다니는데 넌 왜 이래?”
“너 같은 애는 사회 나가서도 힘들겠다.”
“울지 마, 그깟 일로.”
“약한 소리 하지 마.”
“그걸로 힘들다고 하면 안 돼.”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유미의 부모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이유는 단순히 딸을 꾸짖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받아온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 역시 어렸을 때 “잘해야 인정받는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식의 비판과 조건적 사랑 속에서 자랐고, 그게 곧 ‘돌봄’이라고 믿으며 유미에게 동일한 톤으로 반응했을 수 있다. 또한 유미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부모는 그것을 보는 자신의 무력감과 불안을 제대로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불안이 “네가 좀 더 잘했어야지”나 “그렇게 행동하면 안 돼”라는 질책으로 왜곡되어 나오며, 사실은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감정이 겉으로는 비판처럼 들린 것이다.
게다가 주변의 시선이나 체면을 신경 쓰는 문화적 압박도 영향을 준다.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 가족의 평판에 어떤 영향을 줄지 걱정한 나머지, 유미의 고통보다 상황을 ‘정리’하려 들며 비판적으로 말했을 수 있다. 결국 그 목소리는 사랑의 뒤틀린 표현이었지만, 유미에게는 상처로 남았고 내면화되어 또 다른 비판적 부모자아로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