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앞두고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올해 영어 전담 교사로 배정되었다. 누구보다도 그 자리를 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첫 발령을 받고 담당했던 3학년 담임으로서의 한 해는 그야말로 카오스였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반은 산으로 갔다. 모든 게 처음이라 하고 싶은 것은 많고 할 줄 아는 것은 없었던 나는 좋아 보이는 것들은 싸그리 모아 몽땅 시도해보았다. 전형적인 백화점식 경영이었다.
재미로 시작해 겨우 끝내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교사인 나도, 학생들도 지쳐가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어설픈 1년을 보내고 이듬 해 새 학년도 희망 학년 및 업무 배정 신청서를 제출할 때였다. 비고에 여느 소설 못지 않은 신파조의 염원을 담았다. 영어 전담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내가 잘 하는 것을 펼칠 기회가 한 번은 오기를. 그런 간절한 호소를 담아 교감의 책상 위에 제출할 때의 기분은 임용고시를 앞두고 긴장되던 것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것이 유미와 만나게 되는 일로 이어질 줄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