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
오늘도 음악감상 시간에 어김없이 군가가 흘러나왔다. S의 신청곡이다. 음악감상요법 시간에는 환자들의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틀어주는데 S는 언제나 군가를 신청한다. 다른 환자들이 정말 싫어했지만 개의치 않고 군가를 신청한다.
S를 알게 되면서 군가가 이렇게 다양한 종류가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배우는 것들은 그의 신청곡 들 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회에서 군가를 들었을 때 더 이상 들을일 없는 노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들려서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그에게 그것을 말한 것은 실수였다. 아마 내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내가 군가를 듣고 오랜만이라고 한 순간 그는 나에게 꽂힌 것 같다.
꽂힌다는 표현은 환자들이 특정 주제에 집착하듯이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가끔 직원들에게도 그런 행동을 한다. 환자들이 직원들에게 꽂히는 것을 상당히 좋지 않게 여긴다. 내가 그가 좋아하는 주제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일까 그는 나를 볼 때마다 군가를 부르고는 제목을 맞춰보라고 했다. 사실 나는 진짜사나이, 멸공에 횃불 말고는 제목을 다 잊어버렸다. 그래서 그의 흥미가 금방 사그라들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S는 끈질겼다. 나중에는 논산에서 훈련을 받았는지 군대에서 보직은 뭐였는지 물었고 군생활을 몇 년 했는지도 물었다. 시도 때도 없이 물어오는 군대 이야기에 처음에는 기억을 끄집어내어 대화를 이어갔지만 나의 군생활은 대부분 그렇듯이 평범했다. 나의 대답이 막힐 때면 항상 그는 군생활 헛 했네 하면서 혀를 차고 돌아갔다. 그리고는 다시 새로운 군가를 부르며 이 노래는 아냐고 물어오는 것이다.
입사한 지도 시간이 꽤 많이 흘러 S의 군대 이야기는 이제 내가 외울 정도로 반복됐다. 가끔 같은 말을 들을 때면 군대 말고 사회에서 있었던 일은 없냐고 묻곤 했는데 그는 자신이 대기업에 다녔었다 정도로 말을 끝냈다. 가끔 많이 맞았다고 하곤 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해 볼 때 그 시절에는 그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의 이야기는 군에서 복무하던 시절이 가장 선명해 보였다. 군대 전후의 일은 말하기 싫은 것 같았다. 그래도 한 번은 자세히 물어봤는데 금성(LG의 옛 이름)사에서 일했다고는 했다.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심 좀 더 자세히 들었으면 했지만 깊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는 음악감상 시간 이외에도 항상 군가를 부르고 다녔다. 식당에서 줄을 설 때도, 운동하러 가서도 군가를 불렀다. 그렇게 큰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작게 흥얼거리는 정도라서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들려도 익숙한 일상이라 별 감정이 안 생기는 듯했다. 어느덧 나는 그의 변함없는 모습이 안심이 되었다. 그의 일상이 변함이 없다는 것은 그의 건강, 정신적이나 육체적인 부분에 이상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 이야기는 이제 그만 물어왔으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는 증거로 느껴져 반갑기도 했다.
S의 일상은 규칙적이고 단조로웠다. 크게 눈에 띄는 구석도, 모난 구석도 없는 조용한 편에 들어가는 환자였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환경에 크게 관심이 없고 그래서 한 손에 꼽을 수의 사람들 외에는 교류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환자들 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환자였다. 아마 군대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그와 그의 주변을 지켜보는 시간이 현저히 적었을 것이다.
그런 S도 남에게 뭐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대가 대부분 약간 굼뜨게 행동할 때이다. 이럴 때는 S가 성격이 괴팍한 노인으로 보인다. 줄을 설 때,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컵라면 물을 받을 때 등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며 투덜거리다 나중에는 한숨을 쉬며 약간의 욕을 섞어서 군기가 다 빠졌다며 웃으며 타박했다. 그의 구박에는 미워하는 감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당하는 환자들도 한번 웃고는 넘겼다. 처음 그런 모습들을 봤을 때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까 긴장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나도 같이 웃어넘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은 S의 모습이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군가만 부르는 괴팍한 모습이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졌다. 그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일흔이 넘은 그의 인생에서 3년여의 군생활이 가장 깊게 새겨진 것이 안되어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S의 군가가 병동의 일상 소리처럼 들린다. 그저 S의 하나의 습관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가 추억하는 몇 안 되는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잘 지내고 있다는 표시 같기도 하다.
오늘도 음악시간에 군가를 신청했다며 투덜거리는 다른 환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다독이며 S의 상태가 변함없이 안정적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