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
매달 초에는 언제나 J에게 간식 택배가 온다. 한 박스가 아니라 3, 4박스가 오는데, 이날은 J와 함께 같은 층을 사용하는 환자들의 잔칫날이다. 그래서 본인보다 주변의 환자들이 오히려 택배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정작 J는 간식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전화로 보호자에게 요구한 '필요한 것들'과 담배다. J는 그것들이 택배로 왔는지만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그에게는 간식은 그저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상관없는 덤인것 같았다.
오늘도 그랬다. 점심 식사 시간 전에 간식으로 가득찬 J의 택배가 왔다. J 앞으로 온 것이라는 말을 듣고 카트를 준비해 택배를 가지러 갔다. 예상대로 라면박스보다 훨씬 큰 3개의 간식 박스가 도착해 있었다. 택배를 가지고 병동으로 돌아와 J에게 점심식사 후 택배를 확인하고 가져가라고 일러주었다. 늘 그래왔듯이 J는 잠시 투덜거렸지만 곧 알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점심식사 시간이 끝났지만 J는 택배를 수령하러 오지 않았다. 그새 까먹은 듯했다. 익숙한 일이었다. J를 불러와 택배를 확인하니 언제나와 같이 처음 보는 간식이 가득 들어있었다. 간식을 건성으로 뒤적이던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기다리던 겨울 점퍼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화를 내며 간식 박스를 내팽개치고 전화를 하러 갔다. 전화로 한참을 실랑이하더니 화가 난 얼굴로 돌아온 J는 간식을 가지고 병실로 돌아갔다. J의 뒤로 한 무리의 환자들이 따라갔다.
아무래도 간식을 나눠먹다 싸움이 날 것 같아 뒤를 따라가 보니 벌써 많은 환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을 뒤로 물리고 일단 간식을 종류별로 나누었다. 간식은 어묵, 치킨, 고급과자등 전부 병원 매점에서 팔지 않는 것들이 가득했다. 모두 다른 환자들이 욕심 낼만한 것들이었다. 우선 자신이 먹을 것을 챙기라고 하니 J는 평소처럼 과자 몇 봉지만 챙기고는 다 나눠 주라고 했다. 그래서 J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환자들을 우선으로 하여 챙겨줘야 할 사람들을 먼저 불러들이라고 하고 그들에게 먼저 간식을 나눠 주었다. 뒤에서 환자들은 혹시나 자신은 얻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냈다. 급하게 먹느라 질식 사고가 날 것 같은 간식들은 제외하고 들여보냈음에도 J의 택배박스 간식은 한참 남았다. 남은 간식들은 하나씩 나눠 주고 받은 사람들은 병실로 돌려보냈다.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만족하고 병실로 돌아갔다. 더 얻기 위해 끝까지 남은 사람들에게는 텅 빈 박스를 보여주며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J는 여전히 겨울 점퍼가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인 듯했다. 과자봉지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점퍼 얘기만 했다. 그러다 분이 안 풀렸는지 다시 전화하러 뛰어갔다. 한참을 큰 소리로 떠들던 그는 돌연 주제를 바꿔 자신의 고환이 짝짝이라며 수술해 달라고 졸랐다.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목소리가 워낙 커서 잘 들렸다. 점퍼에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짝고환 얘기에서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이제 70을 넘었으니 어서 이성을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고, 자신이 황태자라고도 했던 것 같다. 그는 진지했다. 하지만 이쯤에서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전화를 하던 그는 지나가던 간호사를 보고는 자신의 고환을 수술해 달라며 매달렸다. 하필이면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간호사였다. J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그녀는 깜짝 놀라며 심각한 목소리로 괜찮냐며 물었다. 오랜만에 자신의 고환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해서였을까, J는 신이 난 목소리로 떠들었다. 아프지는 않지만 남자로 태어난 이상 이 수술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왜 지금 바로 수술해주지 않느냐며 따졌다. 간호사의 뒷모습에서 당황함이 역력했다.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두고 볼 수도 없어 내가 나서서 그의 주의를 끌었다. 2시간 뒤에 흡연 시간인데 나갈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 것으로 그의 주의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흡연 얘기를 듣자 그는 금세 간호사에게 흥미를 잃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2조원을 줄 테니 자신을 모시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한 얼굴로 병실로 돌아갔다.
오후 요법시간이 끝나고 J가 나를 찾아왔다. 직원들에게 5백만원씩 월급을 줬는데 받았냐고 물었다. 웃으며 아직 월급날이 아니라고 대꾸하자 다음에는 8백만원을 주겠다며 짝고환 수술을 위해 외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이쯤에서야 말하지만 J의 고환은 멀쩡하다. 의학적으로도 실제로도 그렇다. J에게 주치의와 상담해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J는 잠시 생각하더니 알겠다며 돌아갔다.
흡연시간이 되자 J는 택배로온 간식들중 먹을때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는 것들을 따로 빼둔것을 기억하고는 언제 먹을수 있는지 물어왔다. 잠시 생각 해본후 내일은 어떻겠냐고 하니 그는 별 상관 없다는듯 좋다고 했다.
이제서야 J는 점퍼와 고환에서 벗어난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