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이야기

난방

by 지인

추워 죽겠네!

난방도 안 틀어주고 얼어 죽으란 말이가!


오늘도 새벽 네시쯤 되자 D가 고함을 질렀다.

자주 겪는 일이라 익숙해질 만도 한대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지금은 8월 중순으로 여름이다.

방에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복도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D는 속옷차림으로 병실의 불을 켜고 고함을 질러댔다.

D의 주변에는 분노의 표출로 이부자리와 옷가지가 던져져 있었다.

같은 병실을 쓰는 다른 환자들이 잠에서 깨어 짜증을 내려하고 있었다.

이미 D를 향해 삿대질과 욕설을 시작하는 환자도 있었다.

다른 병실의 환자들이 깨기 전에 D를 진정시켜야 했다.


그는 계절에 상관없이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어 춥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는 욕설과 고함을 지르며 다시 잠을 자지 않았다.

겨울이었다면 난방 장치가 고장이 났나 하고 점검을 해보았겠지만 지금은 여름이었다.


D를 달래며 여름이라 난방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D는 얼어 죽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멈추지 않는 그의 욕설과 고함을 들으며 D에게 다른 사람도 있으니 조금 목소리를 낮춰 달라고 했다.

그리고 D를 향해 불만을 터트리던 환자를 달랬다.

환자들은 늘 겪는 일이라 그런지 곧 진정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목소리 크기는 약간 줄었지만 D의 화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추워 죽겠다며 끊임없이 화를 냈다 왜 난방을 안 틀어주냐고 따졌다.

던져진 옷가지들을 주워 침대에 올리고 D에게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는 거세게 거부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다.

나도 맞고함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상황만 나빠질 뿐이다.

짜증과 화가 치밀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참았다.


차선책으로 D의 주의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물 한잔 마시고 일단 바닥에 던져진 옷부터 정리하자고 했다.

D는 자신이 던진 옷들을 보고는 알겠다고 했다.

다른 환자들에게는 대신 사과하며 한 번 더 재수면을 독려했다.


D는 옷이 많았다.

옷을 주으며 두런두런 일상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겨울옷이 많다 깔끔하게 정리해 둔 것들인데 화난다고 던지면 아깝지 않느냐는 등의 말이었다.

말을 건네며 그를 향한 짜증도 좀 누그러졌다.

말을 하며 D의 표정을 보니 아직은 여름이라 난방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는 아닌 것 같았다.

병실을 불은 다시 소등하고 취침등을 조금 밝게 한 뒤 천천히 그리고 약간은 손이 가게 정리했다.

D는 속옷 차림임에도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정리를 시작했다.

한동안 그와 나는 옷가지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D의 정리가 거의 끝날 무렵 나는 차가운 음료수를 가져와 그에게 건넸다.

그제야 D는 요새 좀 덥다고 했다. 조금 진정된 것 같았다.

그때서야 느긋한 말투로 지금은 여름이라 그렇다고 했다. 내 말에 맞장구치며 여름은 좀 더워야 한다고 했다. 어느새 D는 자신이 춥다고 한 것을 다 잊어버린 듯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D는 다음날 기상을 하면 새벽에 난동을 부린 것을 다 잊어버리고 기상 때까지 잘 잤다고 했다. 본인은 아무 불편이 었었다. 다만 같은 방을 쓰는 다른 환자들과 직원들만 힘들었다.


D가 입원한 초기에는 진정시키기 위해 한참을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한번 화가 난 D는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시키려는 시도가 화를 더 북돋우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D는 분노가 조절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쌓인 게 터지는 게 아니라 아무런 전조도 없이 화를 냈다. 아무래도 화를 내는 과정이 다른 것 같았다. 그러고는 언제 화를 냈었냐는 듯이 잊어버렸다. 처음에는 모른 척하는 줄 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는 지난 일을 자주 잊어버렸다. 담배를 폈던 것을 잊어버렸고, 약을 먹은 것도 잊어버렸다. 그제야 나는 이 사람이 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의 상태를 알게 되자 그를 대하는 방향도 어느 정도 정할 수 있었다. 다른 환자들처럼 화가 난 상황을 직접 다루는 것보다 그의 신경을 분산시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그에게도 다른 환자들에게도 안전하고 좋았다. 진정된 그에게 나는 아까는 왜 그랬냐, 지금은 좀 괜찮냐는 등에 질문은 하지 않았다. 굳이 질문을 하지 않아도 그가 고함을 지른 것들로 정황을 알 수 있었다. 상황을 되살려 기분이 풀어진 그를 자극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는 오늘도 기상시간이 되면 잘 잤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피곤함도 잊고 헛웃음이 나왔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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