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의 이야기

간식

by 지인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출근길에도 그칠 줄 몰랐다.

빗줄기만큼이나 생각이 많아졌다.

비가 오면 병원 안 환자들은 유독 예민해진다.

아마 습도가 높아지면서 짜증이 솟아나는 탓인 것 같다.

특히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모두가 기다리는 간식 날이었다.

평소 간식 날은 별 탈 없이 지나가는 법이 없지만, 비까지 오는 날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기다렸다는 듯 터지곤 했다. 누군가 간식을 훔쳐 먹었다며 언성이 높아지고, 심지어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일도 있었다.


조용히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출근했지만, 이미 병실은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서둘러 에어컨을 제습으로 맞추고 가동했다.


그때 B가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함께 짙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어젯밤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했다. A가 간밤에 B의 간식을 몰래 먹어버린 것이다. 지난 근무자가 중재했지만, 앙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B는 오랜 시간 병원에 머물고 있는 장기 입원 환자다. 작은 키에 통통한 체격, 겉으로는 점잖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사실 그는 고집이 세고 불만을 쌓아두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욕심도 많아, 다른 사람의 간식을 얻어먹지 못하거나 자신의 세탁물이 늦게 끝나는 사소한 일에도 불만을 품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한계에 도달하면, B는 어떤 일이든 구실 삼아 사고를 쳤다.

TV 채널 시비, 배식 줄다툼, 심지어 목소리가 시끄럽다는 등 갖가지 이유로 싸움을 벌였다.

대부분 말싸움으로 끝났지만, 한 번씩은 몸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리고는 잠시 뒤 '할 말이 있다'며 찾아와 한참을 하소연하는 식이었다. 이런 B의 '주기'는 경험 많은 직원들에게는 익숙한 패턴이었다.

우리는 대충 이맘때쯤 그가 또 일을 만들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B는 화를 낼 구실을 찾고 있는 듯했다.

그 조짐을 눈치챈 다른 환자들은 B와 부딪히지 않으려 조심했다. 분풀이 대상이 되거나 소란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몇 년 만에 딸에게서 택배가 왔다. 딸에게 한참을 사정한 끝에 받은 것 같았다.

B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B는 이 택배로 다른 사람들에게 '체면이 섰다'라고 말했다.

늘 얻어먹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내심 자신도 한턱내고 싶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나는 축하하며 B의 쌓였던 불만이 좀 해소되었겠거니 생각했다.


B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너무 좀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간식을 도둑맞아 기분은 나쁘지만, 머리를 식히고 보니 겨우 과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 싸우고 분노하는 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요즘 들어 부쩍 그렇습니다."

그는 A에게 지나치게 화를 낸 것도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사실 그는 원래 그랬다. 이번엔 구실이 과자였을 뿐이었다. 내가 보호사로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는 일정 주기로 쌓아놓은 것을 터뜨렸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나는 B를 다독였다. 화를 내는 순간에는 자신도 모르지만 지나고 나면 오히려 후회가 되는 법이라고 말했다. B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간식을 가져오면 A와 나눠 먹으며 풀어야겠다고 병실로 돌아갔다. 도둑맞은 간식을 물어줘야 하는데 매점에 없는 품목이라 비슷한 것으로라도 물어주겠다고 하자, 그는 이제 괜찮다며 웃었다. 이번에는 생각보다 빨리 끝날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간식을 다 나눠주고 A와 B를 보러 갔을 때, 그들은 이미 서로 멱살을 잡고 있었다.

A가 훔쳐 먹은 만큼 간식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까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둘을 떼어 놓았다.

B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너무 분해서 내놓으라고 했다고 했다. 횡설수설하는 A의 말을 알아들은 것이 신기했다.

아직 B의 주기는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근무는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피곤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B는 평소 쌓아두었던 불만들을 분노와 욕설을 담아 쏟아내기 시작했다. 50여 분이 넘도록 한참을 혼자서 떠들어댔다. 병원 생활 모든 것에서 불만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B의 말을 끊기보다는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나는 일단 아까 괜찮다고 한 간식을 물어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B는 자신이 한 말이 있어서인지 망설였다.

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다른 간식도 아니고 평소 왕래가 없던 딸이 보내준 것이었으니 더 각별했을 테고, 아까웠을 것이다.


나는 B의 표정을 주시하며 이 일을 여기서 끝내든, 아니면 물어주는 간식을 받든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 계속 감정을 쌓아두면 피곤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내가 따라주는 음료수를 마시며 B는 이번에는 정말로 끝이라고 말했다.

의심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B를 병실로 돌려보냈다.

여러 번 화를 내며 쌓인 불만을 토해내서 인지, 다행히도 B는 평소처럼 점잖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른 환자들의 욕설 섞인 말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웃으며 넘겼다.

그럼에도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그와 그의 주변을 살폈다. 점심, 저녁 배식을 할 때도, 담배를 피우러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이 지나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B가 웃으며 다가왔다. "오늘 피곤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한결 풀려 있었다. 드디어 이번 주기는 끝난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안도감과 함께 하루의 피로를 느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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