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의 이야기

회복

by 지인

점심시간이 다되어 H가 투덜거리며 찾아왔다. 같은 방의 F가 자신의 간식을 훔쳐 먹었다는 것이다. 짜증을 내는 H를 다독이며 잠시 생각했다. 같은 방의 F를 한마디로 묘사하자면 식물과 같은 사람이었다. 식사 시간과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침대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잠만 자는 사람이었다. 평소에 간식에도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귀찮아서 주문을 하지도 않았고, 보호자가 가져온 간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인물이 남의 간식을 몰래 훔치는 수고스러운 일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나도 아니고 몇 개나 훔쳤다는 말에 더욱 신뢰도가 떨어졌다. 거기에 더해 기억력이 많이 약한 H의 발언이라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확인은 해야 해서 F에게 가서 물어보니 그와 만난 후 6년 정도가 지났음에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멋쩍은 미소와 함께 자신이 훔쳐 먹었다고 순순히 시인하는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놀란 것을 숨길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함께 따지러 온 H조차 F가 말을 한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처음으로 자고 있는 모습 외의 표정을 보아서일까, 미소를 보아서일까 아니면 언제나 '네' 하는 대답 외의 말을 들어서일까 순순히 시인하는 모습에서 짜증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F를 알고 지낸 지 6년이나 지났지만 그가 무엇인가에 반응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랬다. 내가 보기에 F는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의욕이나 욕구가 없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간식이나 담배, 신문, 장기, TV 등 저마다 둘 이상의 관심 있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만은 그런 것이 없었다. 오히려 만사가 귀찮은 듯했다. 하루 종일 잠만 잤고 깨어있는 시간이 없었다. 운동요법에 억지로 대려도 가보았지만 거기서도 나무에 기대서 잤다. 한동안 F가 낮에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지만 F는 변함이 없었다. 이때의 나는 F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그런 F의 상태에 지쳐 갈 때쯤 코로나가 터졌고 자연스레 F가 좀 더 의욕을 보일 수 있게 해 보자는 생각은 사라졌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코로나도 끝났다. 코로나 기간 동안 F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화장실을 사용할 때, 식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말을 걸어도 마지못해 '네' 하고 대답을 했었다. 그런 그가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왜 훔쳤는지 물어보는 것도 어떤 대답을 할지가 더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간식을 훔치는 다른 환자들이 늘 하던 배가 고프다는 것이 아니었다. '먹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망한지 다시 슬쩍 웃어 보였다.


F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거뭇 칙칙했던 얼굴에 붉은 혈색이 도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인가 욕구가 생긴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해서 인지 F의 움직임이 좀 더 활발해진 것 같았다. 어기적 거리며 걷던 걸음걸이도 한결 가벼워진 것처럼 보였고, 식사 시간에도 마지못해 아무거나 입에 넣던 모습보다는 좀 더 마음에 드는 반찬을 위주로 먹으려는 모습도 보였다. 미미한 변화라고 생각했는데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고 보니 그의 많은 부분이 활기가 돌았다.


생각해 보면 F의 변화는 꽤 오래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밥을 많이 먹기 시작했고 후식으로 나오던 과일들을 내팽개쳐 두지 않고 먹었으며 한 달에 한번 주문하는 외부 특식도 주문하러 왔었다. 다른 개성이 강한, 활동량이 많은 환자들에 묻혀있었을 뿐이었다. 그의 평소 생활을 생각해 보면 매우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너무 궁금했다.

무엇인가 쌓이다가 터진 것일까. 아니면 갑작스러운 변화일까.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이 활기찬 인물들로 바뀌었기 때문일까. 먹는 것에만 의욕이 생긴 걸까.

묻고 싶은 것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슬쩍 다가가 그의 표정을 보니 아직 자세히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무기력을 벗어나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예전보다 활기가 돈다는 점은 확실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 F와 만난 후 코로나전까지는 그의 생활패턴을 바꾸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 했었지만 거의 소용이 없었다. 그의 변화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라면,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환자들의 활력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내가 시도할만한 것들은 별로 없었다.


F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만큼 그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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