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이야기

전동(前)

by 지인

K가 결국 전동을 갔다.


전동은 병동을 옮기는 일을 말하는데 대부분 원래 있던 병동에서 다른 환자들과 관계가 좋지 않거나 병동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 다른 병동으로 이동을 하는 일종에 이사이다. K는 비교적 말수가 적은 환자였지만 지나치게 빨래와 분리수거, 화장실에 집착했다. 한번 빨래를 돌리면 3시간이 넘게 세탁기가 돌아갔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번씩 매일을 하루 종일 세탁기를 독점하고 있으니 다른 환자들의 원성을 샀다.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는 동안에는 쓰레기통을 뒤져 분리수거를 했다. 문제는 그가 쓰레기를 정리하는 동안에 다른 환자들이 쓰레기통을 사용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조용히 말로 제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욕설과 손이 올라간다는 게 문제였다. 화장실도 쓰레기 분리수거와 마찬가지였다. 멋대로 청소 도구함에서 청소도구를 꺼내어 화장실을 청소했다. 몇 번이나 청소도구함의 열쇠를 교체했다. 그러고는 화장실 바닥과 변기에 물을 뿌려댔다. 역시 다른 환자들의 사용을 막았다.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인가 긍정적인 면은 전혀 없었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처음부터 잘 되어 있었고, 화장실은 깨끗했다. 그가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엄연히 병동 환경 미화를 위해 일하는 직원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같은 층의 환자들이 K와는 도저히 같이 못 지내겠다고 들고일어났다. 처음에 한두 명씩 항의를 하더니 점점 늘어나 달래는데 한계가 왔다. K는 결국 원래 있던 층의 환자들보다 좋게 말해 개성이 강한 환자들과 같은 층을 사용하게 되었다. 한동안 조용했다. 환경변화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을 수도 있고, 자신보다 더 개성이 강한 기질을 사람들을 마주하니 저절로 자제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세탁기에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쓰레기통을 엎어 분리수거를 하지도 않았고 화장실에 물을 뿌리지도 않았다. 간간히 안면이 있는 환자들과 적당히 대화를 하며 지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무렵 K의 집착이 다시 행동으로 나타났다. 가장 먼저 세탁기에서 포착되었다. 계기는 별것 아니었다. 누군가 세탁할 때 주머니에서 휴지를 빼지 않고 빨래를 돌렸는데 그 잔해가 K의 옷에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조용히 한숨을 쉰 K는 말없이 다시 세탁기를 돌렸다.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세탁 1회, 헹굼 2회, 탈수 바지 하나를 세탁하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리고는 각 병실을 돌아다니면서 조용히 다른 이들의 빨래를 걷어와 세탁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널어놓은 빨래가 없어지자 환자들이 도둑이 들었다고 난리가 났었다. 이 일이 한동안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직원들이 개입하여 K와 환자들 사이를 중재를 하고 K에게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K의 상태는 점점 예전 층에 있던 때로 돌아갔다. 이미 락스 소독이 끝난 화장실에 오전, 오후 물을 뿌리고 다른 환자들의 사용을 막았다. 분리수거된 페트병을 쏟아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하며 다른 환자들에게 욕을 했다. 결국 K를 대하는 어조가 점점 강경해졌다. 이런 생활이 제법 긴 기간 반복되었다. 다짐을 받으면 그날 하루정도는 조용했다. 나는 점점 이런 반복에 지쳐갔다. 정신적으로 마모되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그와 한번 진지하게 대화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저녁 투약이 끝난 후 환자들이 할 말이 있다며 찾아왔다. 예상대로 K에 대한 항의였다. 저마다 화가 난 이유가 달랐다. 공통점은 모두 K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과격한 이들은 싸우면 말리지 말라는 말도 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화장실, 세탁기, 쓰레기통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하기보다는 하나씩 해결하는 게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오늘은 세탁기 이야기를 하자고 정하고는 K를 사무실로 불러왔다.


커피 한잔을 타주며 근황을 묻는 것부터 시작했다. 일상적인 대화로 느껴지기를 바랐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용히 커피를 쳐다보다 그냥 신경 쓸게 많다고 했다. 나는 한가한 분위기를 유지 한채 그에게 신경 쓸 것들이 뭐가 있는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다른 이들의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안하무인처럼 굴던 그에게 그런 대답을 들으니 의외였다. K자신도 다른 환자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안다고 했다. 주원인이 화장실과 세탁기 때문인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쓰레기는 의외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세탁을 그렇게 오래, 자주 하면 옷이 상하지 않냐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세탁을 하면 마음이 좀 편하냐고 물으니 하는 동안은 뭔가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좀 낫다고 했다. K의 분위기를 보니 조금 더 나아가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세탁기를 오후에 1시간씩 한번 저녁에 1시간씩 한번 하는 식으로 사용하는 시간과 횟수를 정하는 것은 어떤가 하고 물었다. K는 나에게 왜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러고는 제발 앞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빌기시작했다. 나는 이런 상황까지 상정하지는 않았기에 많이 당황했지만 표정은 평온함을 가장한 채 K를 진정시켰다.


K를 의자에 앉힌 후 그의 빈컵에 음료수를 따라주며 말했다. 하지 말라고는 않을 테니 다른 환자들과 타협을 해보자고 했다. K는 약간 안심한 듯 알겠다고 했다. 나는 아까 말한 하루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여 저녁에 2시간씩 한 번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줄인 이유는 다른 환자들과 부딪히는 횟수를 줄여보고자 그렇게 한 것이었다. 기대를 품고 한 제안은 아니었지만 K는 순순히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그렇게 K는 다시 하루 2시간, 저녁 시간에만 세탁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약속이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이후 한동안은 평온했다. 환자들의 세탁기를 향한 원성은 줄어들었고, 세탁기는 정해진 시간에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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