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의 이야기

by 지인

N은 입사이후 처음으로 대화 비슷한 것을 한 환자이다. 그는 언제나 병실 한쪽 구석을 자기 자리로 정하고 서는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책과 공책을 꺼내어 하루 종일 무엇인가 적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간혹 혼잣말로 분노에 차서 떠드는데 자신이 독립운동가 지청천의 후손이라며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가만두지 않겠다며 화를 내곤 했었다. 그럴 때면 그의 주변의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은 익숙한 듯 누구도 쳐다 보지도 았았다. 하지만 처음 망상 환자를 본 나로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상태에 어딘가 두렵기도 했었다.


그런 첫인상과는 달리 그와는 의외로 대화가 통했다. 그는 병동에서 몇 안 되는 신문과 책을 읽는 환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망상이 도지지 않았을 때만큼은 가진 지식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말을 할 줄 알았기에 대화의 주제가 널뛰지 않아 그의 말을 이해하기가 편했다. 어느 날은 스마트폰의 색깔들 중 로즈골드가 뭐냐는 질문도 해왔고, 또 어느 날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누구이다라고 하며 자신의 정치관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를 보면서 이런 종류의 환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환자들에게 익숙해질 무렵 그에게서 한걸음 물러서게 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물이나 음료수를 절대로 마시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소변을 마셨다. 목이마를 때도 약을 먹을 때도 언제나 자신의 소변을 마셨다. 내가 그것을 시간이 좀 지나서 알게 된 이유는 그가 다행히도 소변을 어딘가에, 가령 패트병 같은 곳에 받아두지 않고 마셔야 할 때 받아서 마시고 깨끗이 씻어 확실하게 냄새가 나는 것을 지워서였다. 내 주변에는 없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소변을 마시는 사람이 있기는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실제 마시는 사람을 보니 전에 없던 생소한 혐오감이 솟아올랐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뒤 그는 나에게 조만간 헬리콥터가 병원으로와 자신을 실어 갈 텐데 나도 함께 가자고 했다. 그는 그의 대화에 순순히 응답해 주는 내가 꽤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마음에 든 것이고 그를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직접적인 협조가 전혀 되지 않는 환자였다. 어설프게 아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된다고 했던가. 그가 바로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어중간한 지식이 오히려 그의 병원생활을 힘들게 했다. 그의 얕은 지식과 왜곡된 정신이 합쳐져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되어 그가 고집부리는 것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그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혹은 병동 환경의 청결을 위해 협조를 구할 때도 자신의 협조는 무엇 무엇에 위배되며 자신은 그렇게 해줄 수 없다며 떼를 썼다. 예를 들어 그는 한여름에 땀을 뻘뻘흘리면서 긴팔 환의 몇겹씩 겹쳐 입기위해 기를 썼고, 식사때 반찬은 먹지 않고 맨밥만 퍼먹기위해 애를 썼다. 그것이 자신만의 논리에 근거한 건강 관리법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에 안절부절못했다. 오래된 직원들은 대부분 그의 고집을 들어주었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거세게 부딪히지 않았다.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그는 누군가의 말에 자신이 움직이는 것에 깊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해주세요 하고 요청을 하면 처음에는 반발을 하다가 곧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렇게 하겠다고 통보해오는 식이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이런 우회적인 접근이 그와 소통하는 방식인 듯했다.


처음에는 우회적인 접근이라는 것을 몰랐던 나는 N의 행동이 다른 환자들에게 전파되면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직원들 왜에 다른 환자들은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가 넘어졌을 때에도 직원들은 뛰어갔지만 옆에 환자들은 힐끔 보고는 저마다 제갈길을 갔었다. 아예 쳐다 보지도 않는 환자들도 많았다. N과 다른 환자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는 결과였다. 어쩌면 무시라기 보다는 저마다 각자의 고민이 머리속을 채우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 해보면 그랬던것 같다. 어쨋든 N의 행태가 다른 환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은 전혀 없었다.


환자들의 병원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N의 보호자를 만났다. 듣기에 꽤나 멀리서 시간을 내어 온 것이라는데 정작 N을 만나지는 않았다. N에게는 칫솔과 치약이든 봉투를 건넸을 뿐이었다. N이 장기 입원 환자이기 때문일까, 늙고 지친 모습의 보호자가 안되어 보였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멀리서 병원까지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는 게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때의 나는 장기입원 환자들의 면회가 서로에게 그렇게 즐거운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N은 전해주는 치약과 칫솔을 말없이 받아 사물함에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눈을 감고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분노를 삮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N은는 젊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나이가 굉장히 많았다. 창백하지는 않지만 하얕고 주름없는그의 얼굴이 그를 실제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게 하는 듯 했다. 첫인상은 30대처럼 보여서 저렇게 젊은 사람이 입원해 있다니 하고 내심 안타까워했는데 실제 그의 나이가 거의 60세에 가깝다는 말을 듣고는 오랜 기간 입원해 있는 그의 처지에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가끔 망상때문인지 허공에 대고 소리지르는 것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신이 억울하게 갖혀있다는 현실에 울분을 토하는것 같았다. 한동안 혼자서 분노를 쏟아내던 그는 제풀에 지쳤는지 다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책에 무엇인가 끄적였다. 그럴때의 그에게 내가 도움이 될것은 없었다. 그저 그의 상태를 지켜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럴때면 내가 이곳에 필요한 존재인가 하는 물음이 솟아 났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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