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의 이야기

외출

by 지인

I는 몸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은 환자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조용한 인물인데 외출만 나가면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것들을 해방이라도 하는지 외출을 나갔다 돌아올 때면 항상 술에 진탕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온다. 술김에 인지 나간 김에 인지 돌아올 땐 양손 가득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온다.


오늘도 I가 외출을 나갔다. 언제나처럼 귀원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연락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늘 그래왔던 일이다. 다만 그가 늦게 들어올수록 술에 많이 취해 들어온다는 뜻이기 때문에 술 취한 그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해두기는 했다. 빈병실에 침구류와 환의를 준비해 술이 깨는 동안은 거기서 지낼수 있게 했다. 간혹 흥분한 상태로 들어올때도 있으므로 마음의 준비도 했다.


아까보다 시간이 더 지나 지금은 저녁 8시다. I의 귀원 예정시간은 오후 5시였다. 평소에는 늦어도 7시 정도에는 돌아왔는데 오늘은 조금 더 늦다. 분명히 예정보다 늦어질 것 같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음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마도 술 마시느라 새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8시 30분 정도가 되어서야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다.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시고 인사불성으로 택시에 타 병원으로 돌아온 것이다. 전화를 끊고 경비실로 향하는데 택시기사님의 목소리로 생각되는 인물과 경비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인사불성인 I를 깨우는 목소리였다. 택시기사님의 후회 섞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손님을 가려 받았어야 했다는 목소리였다.


도착하니 택시 안에서 이곳이 어디인지 분간도 하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I와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택시기사님과 경비실의 직원들이 보였다. 택시기사님은 이제는 씨뻘것게 달아오른 얼굴로 욕을 퍼붓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좀 해달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 사이로 I에게 인사를 하니 그제야 I가 정신을 좀 차린 듯 악다구니 대신 인사를 해왔다. 5년 동안 안면을 튼 것이 헛수고는 아닌 모양이었다.


예상대로 I의 수중에는 택시비가 없었다. 화가 나 연신 욕을 뱉어내는 택시기사님에게 죄송하다고 대신사과를 하며 택시비를 대신 계산하고 비틀거리는 I를 부축해서 병원 정문을 넘어 들어왔다. 통장에서 돈을 많이 찾은걸로 아는데 그걸 다쓰고 왔나 보다. 술에 취하지 않아도 종종거리며 걷던 그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이 위태로워 보였다.


술에 취해 정신없는 와중에도 I는 담배 하나 피고 들어가면 안 되겠냐고 했다. 정신없는 중에도 담배생각을 하다니. 별말 없이 흡연장으로 데려가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그가 정신을 조금이라도 차리기를 바랐다.


병동에 도착하니 그를 기다리고 있던 같은 병실의 사람들이 이미 마중을 나와있었다. 모두들 I가 한가득 사들고 온 간식이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비틀거리는 I를 데리고 사무실로 갔다. 의자에 I를 앉히고 그와 별내용은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짐을 검사했다. 반입 가능한 물품과 위해가능성이 있는 물품을 구분해 정리한 후 I에게 환의를 건네주며 빈병실로 데리고 가 갈아입기를 권했다.


한 달 만에 나가서 술을 마셔 기분이 좋은지 I는 싱긋싱긋 웃으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가져온 음식들은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내일 돌려주겠다고 하니 어쩐일로 군말 없이 좋다고 했다. 기껏 마중 나왔던 다른 환자들이 아쉬워했지만 늦은 시간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와 대화하며 술을 얼마나 마셨냐고 물어보니 맥주 3병을 마셨다고 했다. 술값으로 돈을 꽤 많이 썼다는데 바가지를 쓴 것 같았다. 병원에서 꼼꼼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밖에 나가니 어리숙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바가지 쓴 것 아니냐고 하니 자신은 그럴 리 없다며 극구 부인하는 것이 왠지 그도 바가지 쓴 것을 눈치챈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에 나가서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릴 것이다.


어쨌든 오늘은 이곳에서 혼자 자게 될 것이다. 술냄새 때문에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채 세수와 양치질을 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에 오늘 외출을 나간 것이 어지간히 기분이 좋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실에서 만족스러워하는 얼굴로 I는 잠이 들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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