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이야기

악화

by 지인

요즘 H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짜증과 화를 내며 관계를 스스로 손상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누군가 간식을 훔쳐간다는 망상 때문인가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입원에 대한, 보호자에 대한 불만을 주변에 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직원들이 자신의 간식비를 착복한다고 생각했다. 직원들 중 그 누구도 간식비를 쉽게 인출할 수가 없다는 것을 몇 번이나 알려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간식비가 부족한 것은 모두 직원들 때문이라며 화를 냈다. 사실 그의 간식비가 부족한 것은 아주 옛날 일이었다. 현재의 그는 매주 많은 양의 간식을 주문하면서 풍족하게 지냈다. 옛날 기억에 근거하여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간식비를 인쇄해주면 그제야 웃으며 돌아갔다. 다음날이면 다시 간식비가 부족하다며 따지지만.

주변의 환자들이 자신의 간식을 훔쳐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F가 한번 훔쳐 먹은 적이 있지만 딱 한 번이었다. 그나마도 다시 돌려주었다. 그 이후로 H의 간식은 사무실에서 보관하며 H가 요청할 때마다 제공했다. 그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간식이 전부 도둑맞았다며 찾아오곤 했다.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는 자신의 간식을 보여주면 아 맡겼었네 하고 돌아갔다.

다른 환자들이 자신을 낮춰보고 자신에게 간섭한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그에게 반갑게 대했다. 병원에서 젊은 편에 속하는 그였지만 아무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를 함께 투병하고 있는 동료로 여겼다. 오히려 많이 챙겨주었다.


그래서 살갑게 다가가는 사람들에게 짜증과 분노를 쏟아내었다. 다행히 언성만을 높일 뿐 그 이상 상황을 진행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병원 내 사회생활은 조금씩 깨져갔다.


H는 기억력 퇴행이 심각하게 진행된 환자다. 그래서 방금 전에 있었던 일도 곧잘 잊어버리곤 했다. 다만 강렬한 기억의 단편만은 문득문득 기억이 살아나는지 그때를 방금 있었던 일처럼 착각하고는 했다. 그 강렬한 기억의 단편들이 대부분 자신이 힘들었거나 화가 난 상황의 일부분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거기에 요즘은 망상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았다. 피해망상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망상과 기억의 파편이 뒤섞이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그래서인지 항상 웃으며 병원생활을 하던 그는 요즘 점점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다녔다. 그의 망상으로 생긴 불만을 해소할 방법은 없었다. 오해를 풀어도 그때 순간뿐이었다.


그는 억울한 것 같았다. 입원하 것이 억울하고, 간식비가 부족한 것이 억울하고, 누군가 자신을 얕잡아본다는 것이 억울하고, 간식이 없어진다는 것도 억울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요법도 요즘은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의 그런 변화를 보면서 주변의 환자들도 서서히 돌아서기 시작했다. 점점 그는 병동에서 겉돌게 되었다. 그럴수록 그는 점점 망상에 빠져갔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가 불만을 터뜨릴 때마다 현실의 증거를 확인시켜 진정시켰지만 딱 그때뿐이었다. 그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상태가 나빠졌다. 누군가 주변에서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거나 퇴원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마다 그의 분노는 커졌다. 마치 자신이 잊고 있던 것들을 깨달은듯한 모습이었다.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사실을 확인시켜 주거나 그의 말을 공감해 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의 증상과 관련된 치료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는 힘들어했다. 치료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증세가 이 정도로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자신이 부당함에 맞서는 투사의 이미지를 갖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직까지 최악의 상태는 아닌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왜곡해 분노의 표출을 정당화하는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디 그의 상태가 획기적으로 호전되지는 않더라도 더 이상 진행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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