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메르스가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 5년쯤 지나 또다른 사태가 일어났다. 누군가는 세상에 종말이온것 처럼 말했고, 누군가는 감기의 한 종류라고 가볍게 말했다. 그렇게 골치아프고 고생스러운 3년여의 코로나 기간이 시작되었다. 뉴스를 잘 보지 않아 코로나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름도 생소한 질병청이라는 곳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이시기에 처음으로 마스크에도 일반 덴탈마스크. kf94, N95등으로 나뉜다는것을 알게되었고, 난생처음 방역복을 입고 근무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 직원들중 누구도 설마 우리병원에서 환자가 나올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2주가 좀 지났을때 의심환자가 확진자가 되었다. 나는 그날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고 적당히 쉬고 있을 때였던걸로 기억한다. 공지사항을 올리는 대화방이 난리가 났다.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다행히도 마침 확진자와 접촉자를 격리할 장소가 있었다.
모두 대충대충 몇일만 참으면 되겠지 하던 마음에서 절대 걸리지 않겠다는 결의가 가슴에 가득 했다. 스스로 나만은 절대 걸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방역복을 입었다. 혹시나 공기를 들이마실까 대화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끝난지 제법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 해보면 모두 헛수고 였다. 직원들은 저마다 여러 경로로 코로나에 걸렸다. 증상없이 지나간 이들도 있고 뉴스에 나오던 것 처럼 응급실에 실려간 이들도 있는데 결론은 병원에서 방역복을 아무리 결의에 차 꼼꼼하게 입어봐야 헛수고였다는 것이었다.
내가 입고 근무한 방역복은 레벨D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하얀색의 방역복을 입고 근무하는 처음 3개월 정도는 차라리 군대를 다시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정도 였다. N95마스크와 고글은 인정사정없이 얼굴과 귀를 쥐어짜대는것 같았다. 페이스 쉴드는 머리통을 비틀어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거기에 마스크는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아 계단을 오르내리면 벽을 집고 숨을 골라야 할정도였다.
화장실을 갈때면 방역복을 갈아입어야하니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평소에 나는 커피를 중독이라고 할만큼 많이 마셨는데 이시기 만큼은 단 한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온몸의 수분이 땀으로 배출되기 바빠 화장실을 갈 여력이 없었을텐데 괜한 염려였다고 생각한다.
방역복을 입고 2시간인가 근무하고 30분 정도를 쉬었던것 같은데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체중을 제면 3kg정도가 줄었었다. 퇴근 할때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와중에나는 무슨 긍정적인 생각이었는지 다이어트가 되어 좋다 라고 생각했었던것 같다.
방역복에 익숙해질무렵 날씨가 점점 따뜻해졌다. 여름이 오고있다는 뜻이었다. 여름이 온다는것 만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방역복을 입고 있는것 만으로 땀에 절어 있는데 여름이라니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제발 여름이 완전히 다가오기 전에 코로나가 끝이났으면 하고 바랬다.
예상대로 여름이 되니 머리가 양은냄비가 달궈지듯 부글부글 거리는것 같았다. 방역복 안은 정말 찜통이었다. 온몸이 찜기속의 만두처럼 익어갔다. 속옷을 짜면 땀이 줄줄 흘렀다. 퇴근할때 입을 속옷을 따로 가지고 다녀야 했다.
한여름 뙈약볕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방역복속에서 불어터진 피부가 여름 햇빛에 불위의 쥐포처럼 말라갔다. 솔직히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일매일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코로나에는 걸리기 싫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마스크를 벗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경각심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체력이 오전에 완전히 소진 되었지만 점심 식사를 먹지는 않았다. 식사를 하는 시간 동안 그늘에서 조용히 아물말도 하지않고 앉아 바람을 쐬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이런 내 심정을 알았는지 배도 고프지 않았다. 배고파할 체력도 다끌어다 쓴듯 했다.
오후 근무는 오전 근무보다는 수월 했지만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 사태로 방역복을 입은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일이 줄어드는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환자들의 틈바구니속에서 그들의 상태를 살피며 업무를 이어나갔다.
근무가 끝났다고 코로나와도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주 1회 수요일 오전에 PCR검사를 하러 직장에 와야 했다. 이건 내가 병원을 직장으로 삼아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줄이 끝도 보이지않게 늘어서 있는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는것 보다는 나았다. 시간이 지나도 이 PCR검사는끝내 없어지지않고 팬데믹 종료 선언이 있고서야 사라졌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