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보면 (당연까지는 아니어도) 이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은 컸다.
잡아당기는 것이 없는 무중력의 진공적 느낌.
F-되기, 감각의 해방, 뮈토스와 로고스의 혼합이 허공으로 휘발됨.
이곳을 거쳐 또 어딘가 다른 느낌 속으로 흐르는 것일까.
나는 매끈한 공간 위에 있는가?
고른 판이란, 일관성이란,
오히려 이렇게도 생명적인 욕동들이 모두 잠잠하고 지루한 채로 다소간 무력한
이런 곳을 말하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는 딱딱한 분할선으로
내 주변을 완전 방비하기에 이른 것일까?
오직 물속 유영의 감각과
달콤한 미온의 체온 만이 나를 간지럽히며 곁에 머문다.
턱걸이와 접영은 다르다.
턱걸이는 아래를 향해 잡아당기는 중력과 겨루지만,
접영은 나아가는 관성이 근육을 돕는다. 부력은 중립이다.
레인 줄이 없다면 나는 눈감은 채 관성을 따라 와류를 따라 흘러 갈수도 있다.
들뢰지언, 페미니스트라고 단박에 선언할 수 있는
저 사람은 되레
‘지고한 존재라는 관념을 군주로 하는 자유로운 정신들의 공화국’에 속한
교수, 사유 공무원, 공적 사유자라서 저렇게 해체를 면하고
당당히 강연대에 설 수 있는 것 아닌가?
분노는 정동, 질투도 정동, 무기력도 정동
스피노자가 말한 변용태. 신체의 모양 바꿈이다.
변용태에 매달리지 않고, 속지도 속이지도 않은 채로
그들이 약속한 건강한 삶으로 이르는 길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