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떤 교포들
A는 5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교포 2세이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비교적 평범한 이력의 법학 교수였으나, B라는 유력한 극우 인사의 추천으로 각종 극우 성향의 회합에서 연사 활동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트럼프 1기 때 아시아계 최초로 '국제형사사법대사'라는 차관급 직책에 임명되기까지 한 인사이다. 그는 최근에 한국의 부정선거론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가 부정선거를 확신하는 이유는 (극우 기독교인들의) “간증들이 차고 넘친다”라는 데 있다고 한다.
B는 10대 때 미국으로 건너가 홍콩계 중국인과 혼인한 한국 교포이다. 미국내 극우 진영의 대모로 불리는 그녀는 100억 달러 규모의 부동산 개발업체를 굴리는 억만장자로, 한국계로는 미국 정계에서 후원금을 가장 많이 내는 큰 손으로 알려져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녀가 글로벌 핵개발 사업체 2곳에서 핵심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 운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탄핵되고 감옥을 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미국의 모 연구소에서 그녀와 한국 극우 세력에 관해 탐사 취재하여 기고문을 게재한 적이 있는데 그 제목은 <끝나지 않은 한국 전쟁을 계속하려는 알려지지 않은 과두정 재벌>이며, 그 글의 부제는 '한반도에서 돈으로 전쟁을 선동하는 자를 따라가면 모든 길은 호눌룰루로 통한다'이다. 하와이 호눌룰루는 B가 있는 곳을 말한다.
C는 극우 진영의 대부격인 사람인데, 최근 CPAC(MAGA 진영 최대의 후원자 조직) 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손을 붙잡고 치켜올리며 극찬한 후로 지명도가 높아져, 미국의 메이져 언론에까지 진출해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인사이다. C가 급부상한 배경에도 B의 돈의 힘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부정선거론은 좁게는 종북몰이를 통한 남한 내부의 갈등과 안보 불안심리를 부추기고, 넓게는 미중의 헤게모니 쟁탈전의 뇌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부정선거론이 완전히 허위임을 입증할 능력이나 증거, 혹은 그만큼의 관심이 내게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어제 출근길 라디오에서 들은 대로 저 A, B, C 세 사람이 국내 부정선거론에 강력한 뒷배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증거나 정황들로 쉽게 확인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 구심점이 되고 있는 B가 핵개발 사업체와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도의 순수성은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간증” 따위가 정치 현실에 대한 진실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며, 이는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이지만,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그와 같은 논리 밖의 정서는 트럼프를 대통령의 자리에 두번이나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플러스 요소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중심이자,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이자, 아메리칸 드림의 현전이었던 영광스런 미국의 과거를 향수하는 수많은 실직 제조업 노동자 출신의 레드넥들, 세계화의 격랑 속에 경쟁력을 잃은 채 쇠락해간 과거 미국의 중산층들. 과거에 매달린 미국민들의 우민화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이미 유튜브에서 밈으로 유행이 될 만큼 일상적인 사실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세상의 변화 뒤에 남겨진 우민화된 백성들은 그러나 그대로 무력하게 물러나지 않고, 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전략을 들고 나온 어떤 자본가에게 강력한 에너지를 끈질기게 공급하고 있다. 부글대는 불만의 증기 에너지. 그 에너지의 구심점인 인물과 핵개발 사업체의 이익이 맞아 떨어지며 A, B, C 같은 교포들은 이러한 에너지를 자신들의 모국에서도 조장하고 포집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그들은 다시 그 모국땅에서 세월 뒤에 남겨진 이들의 상실감과 향수에 호소하여 그 쓸쓸한 에너지들을 긁어모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행히도 이 삼복 무더위에 구치소 신세를 지고 있는 어떤 분은 그 에너지가 미국과의 연계를 통해 한국에서도 충분히 빨리 모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그토록 무모하고 과감한 베팅을 내질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