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뒤켠에 남겨진 이들 3/4

by Zoroaster O

3. 박정희

세상은 변한다. 그 변화, 변화를 일으키는 속도, 속도를 가능하게 하는 힘들, 그것만이 세상의 본질이라는 들뢰즈의 철학은 어떤 이들을 매우 현기증나고 실망스럽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변화를 싫어하고 머무르고자 하는 그들 조차도 인간인 한 모두 변화하고 있다. 단지 변화의 속도에 차이가 있고, 새로움에 대해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 하는 수용의 태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박정희는 오히려 좌파가 아니었을까?”라는 아들내미 말마따나, 당대의 박정희는 아마도 개혁을 넘어 파격의 아이콘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의 시각에서 전제적이고 폭력적일지언정, 당시의 관행과 관습을 넘어서서, 신생 대한민국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속도높은 과단성을 발휘했고, 오늘날 이 나라의 도약이 그런 그의 파격을 한 계기로 삼았음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화에서 본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 애도 행렬의 민중과 회사근처였던 현장에서 직접 체험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 애도 행렬의 민중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과 노, 둘 다 각자 그 시대의 새로움, 신성이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또한 교포 B가 박근혜의 탄핵으로 보수 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는 말에 일말의 진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박정희의 시절에 약동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에서 자기 코나투스의 역량이 강화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리라. 어쩌면 그녀는 박정희라는 신당을, 신탑을, 가문을 수호하기로 마음 먹었던 순수한 수호령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향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세월의 첨단에서 밀려나기 마련이다. 물론 우리는 모두 기술이나 사유의 첨단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나름의 안온함 속에 머물러도 좋다. 그럴 수만 있다면. 변화와 속도의 인간들도 해없고, 보이지도 않는 모든 요괴를 드러내어 소멸시키거나 봉인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하지만 세월의 가치 변화는 리더 박정희와 그의 통치 방식에 녹아 있던 전제적 폭력성을 발견하고 그와 그의 유물들을 그대로 빛나던 것으로 머물게 두지 않았다. 그런 세상의 변화가 B는 못마땅했을 것이고, 그것은 그저 못마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머물고자 했던 터전, 믿으려고 했던 자기 동일성의 커다란 일부, 지키고자 했던 사명을 한꺼번에 부정당하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런 B는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그런 뒤에 남겨짐, 즉 소외의 정서는 모방 과정을 거치며 폭발적인 에너지로 화하는 것을 그들도 보았을 것이다. 그 때에 영리에 대한 예민한 감각도 더불어 작동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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