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글쓰기
변화의 뒤에 남겨진 누군가를 우민으로 만들거나, 그들의 코나투스를 우울과 슬픔의 극단으로 몰고 가지 않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내가 아닌 누군가로 하여금 소외감을 못이겨 해꼬지하는 요괴나 교포B처럼 흑화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 자신이 세월의 뒤켠에 남겨질 때 그런 응어리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다소간 준비는 해 둘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할머니인 나츠메 레이코는 요괴들과 대결을 펼쳐 거기서 패배한 요괴들의 이름을 빼앗았다. 패배자들의 이름을 '우인장'이라는 노트에 적고, 레이코가 그 이름을 부르면 이름을 준 자들은 언제든 달려와 그녀를 도와야한다. 세월이 지나 '우인장'을 유품으로 받은 나츠메 타카시는, 그러나 그 요괴들의 이름을 노트에서 뜯어내 하나하나 되돌려주려 한다.
그런데 뺏은 이름을 적은 노트에 레이코가 붙인 이름은 '우인장'이다. 우인(友人)이란 친구의 일본어식 표현으로 보인다. 게다가 표면상 '꼬붕'과 '오야붕' 관계로 종속된 듯 하지만, 이름을 줬던 요괴들도 하나같이 레이코를 좋은 친구로 추억한다.
이름을 적는다는 것은 기호작용으로 인연과 기억을 포착해두는 행위, 그를 통한 삶의 의미 생성의 과정들일 것이며, 그 소중한 인연의 기호와 의미들로 우리는 인생을 채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름을 돌려준다는 것은 그 삶의 의미들을 다시 꺼내어 추억하고 그것들과 작별하는 과정 같다. 기호작용으로 기표 안에 박제되었던 의미와 기억을 꺼내, 다시 녹이고 풀어내는 일.
적는다는 것은 한 때 나를 들뜨고 때로 한없이 침잠하게도 만들었던 많은 의미들, 기표들과의 순탄한 이별을 위한 준비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나를 저만큼 앞질러가는 것이 보일 때, 나는 내가 써가는 이 글들을 펼쳐 놓고, 그 안에 여며두었던 이름과 기호와 의미들을 다시 세상 속으로 녹여 흘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숨결을 불어 넣어 이 밤의 무한한 대기 속으로. 박정희도, 노무현도, 들뢰즈도, 시절의 벗과 적들도, 가족과의 반짝이는 한 때들도. 지금도 가끔씩은 그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