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한 열망은 어디에서 왔는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벽
그것은 시조 유미르가 이천년간 모래와 물로 하나하나 쌓아올린 견고한 거인들의 벽
시조 유미르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원한,
타자에 대한 맹종적 사랑,
그리고 예속적 삶으로부터 오는
악마적 고통이 결합된 고대의 존재
에렌은 말한다.
나는 자유다
너희들도 자유다
그러나 지크가 아닌 에렌이
시조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은
에렌 또한 예속된 자였기 때문이다.
유미르는 유대를 원했기에
다름 아닌 공감의 힘이 작동했을 것이다.
고로 에렌은 자유가 아니다.
"나는 자유의 노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인의 힘을 무력화하는 건
유미르의 선택이 아니라 미카사의 선택.
그 순간을 위해 에렌은 그저 미래의 기억,
운명에 따라 나아갔다고 말한다.
유미르의 선택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맹종
미카사의 선택은 사랑하는 이의
폭주를 끊어내는 단호한 결단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태도라는 면에서
유미르는 인간적이고, 미카사는 초인적이었다.
미래의 기억은 어떻게든 반드시
한치의 오차없이 실현되었던 것
그 속에서 에렌은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아니! 데모크리토스적 원자의 세계에서
자유란 있을 수 없다.
고로 에렌이 말한 ‘나는 자유다’란 실은
가치로서의, 기치로서의 자유,
표상된 자유였을 것이다.
증오의 벽 너머에서 평평하고 고른
무인지대를 독차지하고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는
꿈.
꿈으로만 그려지는 자유
타인의 자유와 부딪히지 않는,
무지의 이념인 비실재인 자유
그러므로 거인의 힘이란
견고한 증오와 대결적 차단의 자식인
허구적 이념의 폭력성이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데모크리토스에
반기를 들었듯,
이념으로서의 자유와
번민하는 자유도 충돌했다.
그런 한에서 더 구구절절한 대화,
기호의 교환이 무슨 소용인가?
에렌이 원했던 것은
이념으로서의 자유로부터의,
자유라는 표상으로부터의 자유였을 것이다.
사랑한 이들의
자유의 결단으로써만 주어지는
운명으로부터의 해방,
축복인 패배,
원망없는 죽음.
그곳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에게 작가가 허락한
종극의 자유는
창공을 나는 비둘기 한 마리.
그 환생을 가능케 한 건
초인 혹은 미륵불이므로.
하지만 현실로 넘어와서,
벽 너머의 창공이 보이지 않고,
때로 그 벽에 생겨난 균열로들부터 침입하는
증오의 감정이
이질적인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벽에 대한, 벽 속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는
어떻게 가능해질 것인가?
이 경우 자유에 대한
갈망의 출처는 또 어디일 것인가?
벽의 저편과 이편을 이해하려는
조사병단, 철학적 인간들이
그 난망한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