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고원을 검색하면 대치동 학원 이름이 뜨니, 국평오는 개탄스런 현실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로부터 소위 “재출현”하는 이 전 세계적 전쟁 기계는 두 개의 형태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먼저 파시즘. 이것은 전쟁을 전쟁 자체 외에는 다른 목적을 갖지 않은 무제한적 운동으로 만들어버렸다. … 두번째로는 파시즘 이후의 형태. 이것은 <공포>의 평화 또는 <생존>의 평화로서, 평화를 직접적인 목표로 삼는 전쟁 기계이다. 808
의문의 여지 없이 현재의 상황은 아주 절망적이다. 앞서 살펴본 바로 우리는 지금 세계적 규모의 전쟁 기계가 마치 공상과학소설에서처럼 점점 강력하게 구성되어 파시즘적 죽음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평화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극히 처참한 국지전을 자신의 일부로 유지하거나 유발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809
우리는 앞에서 전쟁기계의 양극을 정의해 보았다. 한 극에서 그것은 전쟁을 목적으로 하며, 우주 끝까지 연장될 수 있는 파괴선을 형성하고 있다. …다른 한 극은… 전쟁이 아니라 창조적인 도주선을 그리는 것, 매끈한 공간을 그리고 이 공간 속에서 인간의 운동을 위한 매끈한 공간을 편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쟁 기계는 이 극에서도 전쟁과 부딪치게 되지만 그것은 종합적이고 보충적인 목적으로서 부딪칠 뿐으로, 이 경우 전쟁은 국가에 맞서 그리고 국가들에 의해 표현되는 세계적인 공리계에 맞서 이에 도전하는 것이다. 810
창조하는 도주선이냐 아니면 파괴선으로 전화하는 도주선이냐. 설령 한 조각 한 조각씩이더라도 스스로 구성되어가는 고른판이냐 아니면 조직과 지배의 판으로 전화해버리는 고른판이냐. 811
‘전쟁 기계’란 그 무시무시한 이름과 달리, 가치 중립적인 것이다. “통제되기를 거부하는 감정이 형성하는“ 외부성을 지닌 것이다. 그것은 원래 유목민적 유래를 갖는 것이다. 전쟁 기계는 전쟁이라는 목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볼 수 있는 탈주, 폭발, 의외성, 통제 불가능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기계(움직이면서 배치를 조작하는 실체?)를 말한다. 국가는 그 운동의 속도 만을 취해서, 정치와 전쟁에 사용하는 것이다.
‘전쟁 기계’ 또한 다른 존재물, 배치물들처럼 배치들 속에서 그 성격이 달라진다. 유목적 배치 속에서 그것은 틈새를 파고들어 균열을 내고, 매끈한 공간을 만들어 인간의 운동에 대한 속박을 제거해 준다. 그러나 국가에 전유(= 포섭되어 성질이 달라지는 채로 지배됨)되거나, 전유된 후 국가로부터 독자적인 것으로 재출현하는 경우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 된다. 국가에 전유된 전쟁기계는 국가의 유지와 정치를 위해 전쟁만을 목표로하는 파시즘의 엔진이 된다. 팽창주의적 국가의 군대가 그것이다. 재출현한 전쟁기계는 다국적 핵개발 기업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목적하는 바는 죽음보다 더 무시무시한 평화이다. 그리고 그 평화속에는 인간의 무고함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크고 작은 처참한 국지전이 포함된다. 평화와 희망과 정의를 사랑하며 큰 욕심없이 소박하고 선량하게 가족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지내던 당신도 어느날 갑자기 그들의 “임의의 적”이 될 수 있다.
교포 B는 그러한 재출현한, 전세계적 전쟁기계의 여러 얼굴 중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터전인 이 나라를 향하고 있는 얼굴이다. 오직 핵을 위한 평화. 그녀와 그들에게 그것을 지키고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증명될 수 없는 불신과 가시적 임의적임을 막론한 적과의 반목을 조장하며, 그 적들과의 국지전을 도발하려는 것조차 서슴치 않는다. 종교와 신의 이름을 동원하는 것이 아직 잘 먹히고 있는 것은 인류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일까? 아무튼 이런 사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또한 사태가 그러함을 드러낸다는 게 생각보다 녹록지 않음을 이번에 체험했다. 적에 대한 것과, 나라에 대한 것, 모두 딱딱하게 기표로 굳어져 있는 탓에 그 모든 것을 어떤 조각글 같은 것으로 녹인 후에 그 기저의 것을 드러낸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의 글이나 토론의 일회성 작업이 아니라 세계적인 “공리계”에 맞서는 무수한 유목적 전쟁기계들의 동시다발적 도전에게 주어지는 과업으로 표현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각자가 믿는 선량한 인간의 본분을 다하고 사는 것만으로 적어도 세계 평화의 적으로 규정되고 목숨을 뺏길 위험이 없는 세상의 가능성은 이토록 지난하고 도달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되어 버렸나? 이 책이 쓰여질 때의 절망이라는 상황진단은 아직도 변함 없이 더욱 견고한 것이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