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명예회복

시나페홀로-철학하다(유튜브)를 보고

by Zoroaster O

스피노자가 말하는 욕망, 즉 코나투스는 존재가 자신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말합니다. 왠간한 깊이에서는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데카르트에게 사유가 존재의 보증이었다면, 스피노자에겐 이 욕망, 즉 자기 보존의 지향 자체가 존재를 보증합니다. ‘나는 존재하고자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되겠죠. 개인적으로는 이 쪽이 좀 더 상식적인 듯 합니다. 몸이 죽으면 사유도 존재도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는 증거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비유기체도 코나투스를 갖고 있다고 했다지만 그 영역은 잠시 접어두고요)

서양 근대 철학자 중 ‘욕망의 철학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스피노자는 그러나 깐깐한 합리주의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대표 저서인 <윤리학> 또한 내용은 욕망에 관한 것을 아우르되, 방법은 공리에서 출발해 가설의 검증으로 이어지는 엄밀한 수학적 논증 체계를 따르고 있습니다.이러한 방법론 또한 신체와 정신의 불가분적 일원론(또는 '평행론')을 주장하는 그의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즉 기존의 이분법적 세계관 하에서 다분히 신체성을 띠는 코나투스라는 욕망을, 정신성을 띠는 수학적 이성의 틀 안에서 다룬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욕망이란 것이 제 아무리 본질적인 것이라 해도 그 본연의 욕망을 그저 날뛰게, 혹은 외부 자극에 따라 멋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방향으로 심화해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욕망을 억제하자는 금욕주의와는 달라 보입니다. 왜냐면, 스피노자는 자기 보존의 욕망이란 게 억제될 수도, 억제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생명으로서, 코나투스를 가장 오래도록, 높이 고양시키는 방편으로 이성의 관여가 필요하다 여겼던 것입니다.

합리적인 방향, 이성의 관여라는 표현이 다소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는 배치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들뢰즈를 통해서 익숙한 용어입니다. 좋고 싫고를 떠나 존재는 존재하려는 욕망으로 존재를 보증받는 것이라는 면에서 코나투스, 이 욕망 자체는 어쩌면 가치 중립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코나투스의 역량(힘)이 커지면 기쁘고, 작아지면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생기있게 오래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은 우리를 기쁘게 하고, 우리가 우울하고 쇠약해지고 살기 싫도록 만드는 일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지요. 심플합니다.

그럼에도 욕망이 다양한 색채나 온도를 띠는 것은 그 욕망을 가진 존재가 어떤 환경(공간)이나 맥락(시간의 선후)에 놓이느냐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오늘 들은 강의에서의 예를 가져와 보면, 양복을 입고 사무실에서 앉아 있을 때와 수영복 차림으로 풀장에 있을 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과 슬프게 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회사원을 기쁘게 하는 것은 승진, 보너스, 실적의 인정 같은 것일 테지만, 수영장의 회원으로 있을 때는 좋은 기록, 멋진 자세, 쾌적한 감각 같은 것이겠죠. 그런 것이 배치이고, 들뢰즈 식을 표현하자면, 우리는 그런 배치들 속에 놓이지만, 코나투스를 실현하는 작용을 하는 존재(기계)인 것입니다. 즉 여기서의 기계란 메마르고 삭막한 금속 재질의 장치들이나 데카르트 식의 양적 산술의 계산기가 아니라, 배치를 걷어내고 남는 존재의 본질적 메커니즘을 말하는 듯 합니다.

이성의 관여라는 표현으로 돌아와 봅니다. 우리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지만, 배치에 따라 다른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기에, 기왕이면 좀 더 지속 가능하고, 존재의 역량을 높이는 쪽으로 느껴지는 배치 속으로 자신을 데려가자는 게 스피노자 <윤리학>의 제안인 듯 합니다. 말이나 글로 욕망을 옹호할 때 맞서게 되는 난점은, 그 단어에게 덧입혀져 있는 부정적 뉘앙스와, 고삐 풀린 욕망들이 서로 충돌하는 대혼돈적 세계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라면 그것이 육체적인 경험이든, 정신적인 활동이든, 이런 두 가지 난점을 잘 헤쳐 나갈 것 같습니다. 렌즈 정밀 세공으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그가 <윤리학>을 지독히도 어렵게 쓴 이유는 아마 사유의 그 같은 정교함을 얻고자 한 데 있지 않나 하고, 아직 개론들을 접하는 단계에서 짐작해 두고 더 읽어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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