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중독

빅터 프랭클, 무라카미 하루키, 소크라테스, 아시모프

by Zoroaster O

서울대 철학과 이석재 교수가 소개한 철학자들이 묻는 다섯가지 물음 중 철학사와 관련된 마지막 것을 제외한 네 가지. 정말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존재론),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인식론), 좋은 논증은 어떤 것인가?(논리론(학)), 좋은 것은 무엇인가?(윤리론(학)).

이 중 마지막 물음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 다른 층위의 물음들로 파생된다.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의미치료’라고도 불리는 로고테라피의 창시자이자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 자체가 삶을 지탱해 줄 수도 있다. 철학의 나머지 물음들도 하나같이 거대하고 끝이 없는 의문의 우주로 뻗어나간다. 스피노자나 니체를 통해 새삼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매료시키는 철학자들은 읽고 듣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한을 대면시키고자 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철학의 물음들에 비하면 종교 마저 유한이다. 기원과 끝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단멸론(斷滅論)과 상주론(常住論)은 모두 유한하니, 양자를 모두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던 부처님은 무한을 대면하도록 가르친 또 한 명의 큰 철학자라 생각된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하루키는 ‘지루하지 않은 것은 싫증 나게 돼 있다’ 비슷한 말을 했다. ‘싫증 나지 않는 것은 지루한 것들 뿐이다’였는지도 모르겠다. 세계와의 부조화에서 빚어지는 고통, Dukha가 억세게 삶을 압박할 때, 싫증 나지 않은 질긴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선택은 다를 것이다.

반대로, 연세대 김상근 교수는 테세우스의 육체적 아름다움만을 추앙한 아테네 ‘황금의 시대’가 어떻게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지루하고도 무한한 가치를 추구했던 소크라테스를 죽이고서, 방향을 잃은 채 아포리아로 빠져들고 말았는지를 들려 준다. 지루하지 않은 것들의 유한함을 쫓는 이들의 운명에 담긴 경고적 교훈을 전하려는 것이다.

아마도 끝내 잡을 수 없을 무한과 흰 바탕에 검은 활자 같은 지루한 것들 속에서 찾아내는 싫증 나지 않음. 그 자체는 삶의 의미는 아니지만, 삶의 의미를 금새 발견하고 일념으로 달음박질 치지 못한 채, 여태 주저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살아 있다는 존재 양태를 쉬이 닫아버리지 않게끔 하는 방벽이 되어 주는 것이기에 자체로 긍정적인 게 아닐까? 아이작 아시모프의 <The last question>이 답을 얻는 순간까지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지키는 쪽에 서 있을 것이다.

두 살 배기 아기 침팬지가 숏츠 중독 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를 동정하려다가, 그나마 그를 압박하는 삶의 고통은 인간 아이들의 그것에 비해 단조롭고 얕을 것임에 생각이 미치니 아찔한 현기증이 들며, 씁쓸해진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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