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운동을 갔다가, 아주 진저리나게 매너 없는 한 인간을 보았다. 돌아와서 아내에게든, 아니면 인터넷 공간에라도 그의 실상을 보고하지 않으면 분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무례와 뻔뻔스러운 몰상식으로 단련된 그 개체와 같은 류의 기호로 불리고 싶지 조차 않은 기분이 들어 나는, 그녀를 쓰레기라 분별해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도 잠 자기 직전에도 그 흉물적인 말투와 표정이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 더욱더 나를 짜증으로 몰고 가려했다. 나의 일상 한 부분을, 우연히 마주친 이 세계의 흉물이 잠식하는 것을 평정하게 넘기는 것이 내겐 쉽지 않은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생의 밀도라는 면에서 존경할 만한 친구 K를 떠올렸다. 그라면 아마도 상대할 가치 조차 없는 그런 종류를 뭐라 부를 지 생각하고 허튼 마음을 쓰는 것 자체도 가치 없는 일이라 여기며, 그런 데 허비되는 시간이나 인생의 짧은 한 시기라도 아까워하였을 것 같다. 그의 태도를 빌려와 보기로 했다.
그는 큰 사업을 일으켰다. 거기에 의미를 담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 습득한 지식과 일말의 진실까지도 그 의미에 봉사할 수 있도록 진력을 다하고 있다. 때로 그것은 어떤 기만까지를 수단으로 동원하기도 한다고 그는 내게 고백한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나는 무엇일까? 하찮은 잡배 하나가 만들어내는 부질없는 정념 따위를 의연히 떨쳐내고 얻은 작은 시간들을 모아, 내가 이루고자 하는, 다다르기를 바랄 목적지나 지향은 있는 것일까?
‘인간 사유의 목격자‘ 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K처럼 큰 돈을 벌고, 대단한 자본적 축적을 이루려 달려가기란 내 흥미 문제 이전에 이미 내게 가망없는 일이 되어 버렸고, 나는 오로지 삶에서 생겨나는 적지 않은 잉여의 시간들을 흰 바탕의 검은 글자 같은 지루한 것들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쫓기듯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에 내몰리듯 서서히, 나는 이 곳으로 왔다. 다행스럽게도 꽤나 오랜 시간동안 그것들 가운데 싫증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곳을 계속해서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우주로부터 생겨나서, 여기 생의 편에서, 내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잉여와 여백을 어떤 활동들로 채워간다. 그리고 나의 지향은 지루하고도 난해하며, 때로는 어떤 폼잡는 듯한 텍스트들 쪽으로 옮겨지는 걸음걸이 같다. 그 행로는 아마도 나의 동료 인류들, 그들이 정신 활동이나 사유라는 것으로 일구어 저장해 놓은 이 글들을 계속 쫓을 것이다. 그리고 싫증나지 않는 류의 것들은 그 안에 있는 무난한 것들이라기 보다는 그 덩어리의 외곽, 혹은 첨점, 혹은 구석진 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들이다. 유명한 것들이 먼저 눈에 띄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은 것들도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나는 아마도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 의해 단단히 규정되지 못한 채 이렇게 흐르며, 그 정신 활동과 사유들을 스캔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나 자신이 그 위에 존재감있게 무언가를 보태거나 더하거나 빼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나는 살인 범죄 현장의 목격자처럼, 지금, 과거에, 우리 동료 인류들의 정신이 무슨 일을 벌여왔는지 목격하는 존재로는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목격에도 질적인 요소가 있다. 좀더 생생하고, 좀더 광범위하게, 좀더 다양한 차원에서. 내 삶의 흔적이 인간 사유라는 현장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주는 작은 실마리, 조각 지문, 족적, .. 그렇게 생각하면서 좀 더 후련한 호흡을 가져본다. 스캐너라는 것은 인간 개체에서도 의미가 각별한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