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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an 05. 2023

바람을 세는 일

바람의 출발지를 찾아서


  쯔억쯔억, 찢어진 깔창의 쿠션 사이로 공기가 들고나가는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소리는 새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난 여름부터 계속됐다. 오른쪽 발가락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이, 사마귀가 자라기 시작했고 두 발가락은 딱 맞는 지그소 퍼즐처럼 물집으로 맞물려갔다. 약을 바르자 희고 얇은 막이 물집을 덮기 시작했다. 사마귀는 죽어가며 통증을 남겼다. 서너 개의 침을 발가락 사이에 꽂고 사는 것 같았다. 걸을 때마다 왼발에 힘이 쏠렸고 얼마 간 뒤에 깔창의 쿠션이 찢어졌다. 퇴근 후 나는 피곤에 절어 잠에 들기 바빴고, 다음날이면 다시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2016년 가을의 어느 날, 태풍 '차바'가 지나갔다. 며칠이나 섬에서 나가는 배가 뜨지 않았던 탓에 나는 일요일 아침에야 퇴근길에 나섰다. 항으로 향하는 길은 섬의 한복판에서부터 쭉 내리막이었다. 서쪽으로 기운 능선을 따라 걷는 동안, 평소라면 배 시간에 쫓기느라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끝머리만 살랑대는 풀과 방치되어 드러난 무덤의 맨살, 결국 폐교 뒷마당의 팽나무 잎 사이로 부서질 10월의 햇살, 추수가 끝난 땅콩 밭 한쪽을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는 까마귀 무리, 높이 자란 억새들이 만든 빳빳한 벽과 그 사이로 밟히고 밟힌 길 위의 부스러기들. 그 조각들을 밟으며 나는 얼마간을 걸어 들어갔고 갑자기 나타난 가파른 경사가 앞에 그대로 멈춰 섰다.


  한순간에 트인 세상을 내려다봐서인지, 나는 불현듯 섬의 꼭대기에 선 느낌마저 들었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 창연한 하늘과 쪽빛 바다는 더없이 쌩쌩했고, 붕 뜬 가슴팍 언저리로 닿는 시원한 바람에 마음까지 탁 트였다. 동시에 나는 이 악의 없는 바람에게서 중요한 무언가를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불어와 나가고 일다가도 잦아드는 녀석이라, 바람은 갑자기 사방으로 향하며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엉거주춤 발을 떼다 빙그르 돌아섰고 분명 아까와 같은 곳을 보고 있는데도 바람의 방향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균형을 잡느라 펼쳤던 손가락 사이, 바람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새삼스레 내게 삶이란, 바람처럼 어딘가로 향할 뿐일지도 모른다는 오래된 생각이 떠올랐다. 잡을 수 없다. 많고 많다는 제주의 바람이라, 쥔 게 없는 빈손은 오래전 마음속에 일었던 어떤 소망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서른을 몇 달 앞둔 어느 겨울, 그러니깐 요양원의 유일한 남자 보호사로 어르신들에겐 총각 샘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길고도 많은 밤들이 버거운 한겨울이었고, 차라리 빨리 나이가 들기를 바라던 20대의 끝머리였다. 섬 생활이란 기대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오해가 더 많았던, 섬사람들 특유의 거친 표현과 외지인에 대한 텃세에 마음 둘 곳이 없었고 당직이라도 하는 날이면 지난밤 놓고 온 외로움이 집안에 가득해 잠도 쉬이 이루지 못했다. 그날은 익숙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과 쪽잠으로 밤을 버텨야 하는 피로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겨울밤의 섬은 최면이라도 걸린 듯 통째로 어둠을 받아들였다. 그나마 섬의 남쪽 끝, 섬머리라 불리는 곳의 등대만이 가끔 고개를 돌려줄 뿐이었고 나는 방마다 들러 어르신들의 잠자리를 확인하고 있었다.


  “총각, 오늘 며칠이꽈?”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공 할머니께서 물으셨다. 종종 음력 날짜를 묻곤 하셨기에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살펴 그날의 음력을 알려드렸다. 할머니는 오른손을 꼽아 날을 세는 것 같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샛바람인 게…."

  나는 날씨 어플을 실행시켜 바람을 확인했다. 바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섬의 바람은 동풍, 바로 샛바람이었다. 그날 뒤로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람의 이름을 정확히 맞히셨고 나는 그저 신기할 따름에 일부러 찾아가 여쭤보기도 했다. 그런 내가 기특했던지, 할머니는 그 바람들의 출발지라며 알려주신 게 있었다.


바람의 출발지 - 북동서남의 순서대로 육지, 일본, 한라산 그리고 섬머리

  북동서남의 순서대로 바람은 육지, 일본, 한라산 그리고 섬머리에서 온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꼭 이 순서를 지키셨고 내가 출근하는 날이면 잘 외우고 있는지 확인도 하셨다. 음력과 파도, 물때 등 할머니는 내게 더 많은 걸 알려주려고 하셨지만 대부분의 제주어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겐 거기까진 무리였다. 그러다 언제였던가, 손을 꼽아 바람을 알아맞히시는 모습에, 나는 할머니라면 바람을 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거기에 섬사람의 비밀이 담겨 있을 거라고, 바람만 셀 수 있다면 나도 토박이처럼 섬의 불편에 적응해 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주문처럼 바람을 외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마당에 나와 물질이 가능한 지 바람을 세어보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날짜를 꼽던 오른손으로 쓰지 못하는 몸의 다른 반쪽을 주무르는 할머니를 바라보면서도 그랬다.


  당시 99세의 공 할머니는 뇌경색의 후유증으로 좌측편마비를 앓고 계셨고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생활하셨다. 하지만 그 몸은 언제나 의지로 가득했으니, 기저귀를 교체할 때면 한 손으로 안전봉을 잡아 몸을 비틀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일부터, 휠체어에 탈 때면 내 목에 한 팔을 걸어 몸무게를 이겨내고, 손녀와 통화하기 위해 얼마간이고 전화를 들고서 버텨내며, 숟가락 하나로 밥 한 톨, 국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식기를 비우는 것까지. 건강에 무리가 되지 않는 한해서, 할머니는 언제나 최소한의 도움만 받고자 하셨다. 몸의 오른쪽이 온갖 일을 해내는 동안 왼쪽은 버티는 역할을 해내야 했고. 한순간 방향을 틀어버린 당신의 삶을 위해, 할머니는 어긋난 균형에 익숙해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바람을 세는 일이란, 그 많은 세월을 손꼽아 살아 낸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방에서 부는 바람 중 어느 하나 알 수 없는 불안을 이기고자 그 출발지를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람을 세어, 주문처럼 외우던 그 겨울, 나는 섬사람의 숙명과도 같은 할머니의 지혜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난 오래전부터 방 안을 채우던 외로움을 꼽기 시작했다. 바람을 세어보듯, 하나하나 지나간 시간들의 출발점을 기억하려 애썼다. 우리가 밤에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그 안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기억해보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게 내 불안의 근원을 애써 떠올리는 것은, 바람의 출발지를 찾고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을 손꼽아 세어보시던 할머니의 지혜에서 온 것이다.


  섬의 꼭대기에 섰던 그날, 쥔 게 없는 내 빈손이 떠올리게 한 바람이란 삶에 대한 집착이었으리라. 삶은 바람처럼, 여전히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언제고 불어와 홀연히 나가기도, 그러다 결국엔 어딘가로 향할 뿐이다. 어쩌면 나는 길고도 많은 겨울의 밤을 또다시 맞이할지도 모른다. 하루를 사는 게 버겁고 뭔가 잘못됐다 싶지만,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던 청춘의 깊은 밤은 서른에도 그랬던 것처럼 마흔에도 불현듯 찾아온다. 다행인 건 겨울의 밤은 길고 깊으니 나는 다시 바람을 세기 시작할 것이라는 거다.          



  쯔억쯔억, 찢어진 깔창의 쿠션 사이로 공기가 들고나가는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소리는 새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난여름부터 계속됐다. 오른쪽 발가락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이, 사마귀가 자라기 시작했고 두 발가락은 딱 맞는 지그소 퍼즐처럼 물집으로 맞물려갔다. 약을 바르자 희고 얇은 막이 물집을 덮기 시작했다. 사마귀는 죽어가며 통증을 남겼다. 서너 개의 침을 발가락 사이에 꽂고 사는 것 같았다. 걸을 때마다 왼발에 힘이 쏠렸고 얼마 간 뒤에 깔창의 쿠션이 찢어졌다. 가을의 태풍이 지나간 어느 날, 나는 섬의 꼭대기에 서서 두꺼운 깔창을 빼고 신을 고쳐 신었다. 생각보다, 하늘은 높았고 발아래 쪽빛 바다가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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