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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06. 2022

떨어져 걷는 길의 위로

50개의 바람과 설움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거미 中, 시인 김수영>

  

  내가 만난 사람들, 의족 위로 다른 쪽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던 할머니, 침대에 누운 채로 끊임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눈동자만은 내 쪽을 향하던 K씨, 장애를 얻은 남편의 방문을 조금 닫고 서툰 한국말로 고향인 필리핀의 가족을 얘기하며 울먹이던 아내, 여덟 살배기 아들과 차에서 연탄을 피우려던 날 오후, 지원금 소식에 바닷가에서 차박을 하게 된 40대 엄마, 13년 만에 동생으로부터 찾은 통장을 뚫어지게 보다가 얼마인지 읽을 수 없어 당혹스러워하던 눈빛의 문맹 어르신, 죽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다 수술 전날 무섭다며 울먹이던 30대 남성, 6번의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내 마음속에 남았다가 사라진 50여 번의 바람과 설움의 표정들…….


  그 사람들을 만날 때의 나는 ‘엄살 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는 것으로부터 멀어진 설움에 복받쳐도 엄살을 피울 상대가 없어, 마음을 안으로만 삼키고 살아가는 이들. 통합사례관리란 그들의 엄살을 받아주는 일인 듯합니다. 내 앞에 쏟아낸 이야기 속 그들이 되어, 말투와 몸짓 그리고 눈빛을 떠올리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일은 때론 쓸쓸하고, 때론 행복합니다. 우리의 노력이 클수록 실망하기도 하고, 뜻밖의 결과에 환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종 서로가 느끼는 만족의 정도가 다르기도 합니다. 그럴 땐 속도를 늦추고 조금 떨어져 그의 이야기를 되새기곤 합니다. 그렇기에 나의 일은 손을 잡고 걷는 산책보다는 조금 떨어져 걷는 산행에 가깝습니다.


  산을 오르는 일, 더군다나 일행이 있는 산행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출발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상대방의 속도를 따라 걷고 또 쉬는 것까지. 그리고 나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까지 일행의 엄살을 들어줘야 합니다. 물론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이끌어주고 밀어줘야 하지만, 마음을 안으로 오래 삼킨 사람일수록 충분히 쏟아낼 기회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일행이 진짜 바라는 것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것을 이뤄낼 계획을 세울 때가 찾아옵니다. 그 때 필요한 작은 반창고 하나에서부터 수백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 이웃 주민부터 동주민센터와 복지기관의 직원들.

  이 모든 것을 준비해 산행에 나서는 나는 ‘통합사례관리사’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자원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일반적인 통합사례관리사와는 다른 제 일의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나는 제주시의 한 주민센터에서 통합사례관리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종합사회복지관의 민관협력팀과 함께 일합니다. 단순히 양 기관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관협력 시범사업 추진을 위해 약속된 업무체계입니다. 이 시범사업의 목표는 민관협력을 통한 원스톱 복지서비스 전달체계 구축입니다. 파트너를 이뤄 현장을 방문합니다. 필요한 복지서비스 정보를 안내하며 직접 신청을 받기도 합니다. 복합적인 문제로 심층적인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공동사례관리라는 과정을 통해, 본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이때 공공과 민간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서로의 자원을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복지사각지대를 해소가 가능한 것이지요. 그렇게 올해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을 복지관 또한 알고 있으며, 50여 개의 사연 속 바람과 설움의 표정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에는 작은 창이 하나 있습니다. 창은 모니터 너머에 있어 사무를 보다가도 창밖의 화단과 주차장에 시선이 가곤 합니다. 상담을 약속한 내담자를 기다리는 중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날도 김 씨를 기다리며 그의 이름이 라벨링 된 파일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가 사무실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한쪽 어깨의 끊어진 힘줄을 봉합하고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 어깨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그와 함께 발열 체크를 하고 안심 코드를 찍은 후 로비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습니다. 퇴원할 때보다 살이 조금 쪄 보였습니다. 그는 어깨부터 허리까지 걸친 보조기가 아직 어색한지, 눌러쓴 모자가 흔들릴 정도로 곳곳을 살폈습니다. 그리곤 잘 지냈냐는 내 인사에 입을 열었습니다. 재활치료를 시작했는데 오후 2시 40분부터 30분 동안은 기구를 이용해서 재활운동을 하고, 이후 30분 동안은 전기치료와 마사지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팔을 올릴 수 있는 각도가 일주일 만에 60도에서 70도로 올라갈 수 있게 됐다는 그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지만, 아주 잠깐 입꼬리가 늘었다 주는 게 만족하는 듯 보였습니다. 김 씨는 입원해있을 때 옆 침상에 있던 아저씨에 대해 말을 꺼냈습니다. 그보다 하루 먼저 같은 수술을 받았던 분으로, 퇴원 후에도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고 했습니다. 아저씨는 병원에서도 진통제를 못 끊더니, 전화로 앓는 소리만 하다 끊는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수술하고 진통제를 이틀 만에 끊었는데요.”

  “그랬죠, 진통제 드시면 속이 쓰려서 식욕이 떨어진다고 하셨잖아요. 워낙 잘 참기도 하시고.”

  “네, 제가 좀 잘 참죠. 그러다가…….” 그는 나를 보더니 멋쩍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만났죠.” 나도 그를 보며 함께 웃었습니다.     


  김 씨를 처음 만난 건, 작년 겨울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파에 도로가 얼어붙어, 가능한 출장은 삼가라는 팀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권 주무관이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오며 소리쳤습니다.

  “출동!”

  “네? 아, 네!” 나는 순간에 팀장님의 말씀이 생각났지만, 권 주무관의 급박한 표정을 보고서 바로 신분증과 가방을 챙겨 따라나섰습니다. 나는 김 씨의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의 상황을 들으며 몇 가지를 메모했습니다.      


· 여수 출신의 30대 후반 남성. 1인 가구. 이혼, 자녀 없음. 연락 가능한 지인 없음
· 두 달 전 실직. 돈이 없어 열흘 동안 굶다시피 지냄. 직접 도와달라고 전화함
· 월세 2개월분 체납. 차량 없음


 빌라 건물 1층 입구의 한쪽에 김 씨가 사는 방이 있었습니다. 초인종은 고장이 나 있었고 문을 두드리자 그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코끝까지 내려오는 앞머리 사이로 초점 없는 눈이 보였습니다. 그는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며, 우리를 집안으로 안내했습니다.


  방이 워낙 좁은 탓에 짐이 많지 않은 데도 세 사람이 서 있을 공간이 없었습니다. 반팔 티 위에 군복 야상을 걸친 그는 침대에 앉아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했습니다. 떨리는 몸 때문에 이야기를 길게 하긴 어려워 보였습니다. 영양실조가 걱정됐지만, 병원 진료는 거부했고 그저 춥고 배가 고프다고만 했습니다. 우리는 맞춤형 급여와 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금 신청을 안내했습니다. 그날은 지원금 신청 마감일이었고, 바로 주민센터에 동행할 것을 설득해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권 주무관은 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금을 신청받고, 주민복지팀에 인계해서 맞춤형 급여 신청 상담을 도왔습니다. 그동안 나는 후원받은 부식들과 전기장판, 겨울 이불을 챙기고 복지관에 연락해 영양식과 체납 월세, 혹시 모를 의료비 지원에 대한 자원을 확인했습니다. 김 씨는 상담이 끝난 후 권 주무관과 함께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류봉투를 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광주에서 왔습니다.”

  “아, 정말로요?”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여수, 친구들이랑 여러 번 갔었죠.” 나는 웃어 보이며 두 주먹을 내밀었습니다.

  “아이고….” 그도 주먹을 내밀어 내 인사에 응했습니다. 월요일에 복지관 직원과 함께 만나기로 약속한 후, 권 주무관과 함께 김 씨를 집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더벅머리, 해진 야상, 흐릿한 눈, 부양의무자 서류가 담긴 봉투를 쥔 떨린 손과 고향 얘기에 선뜻 내민 주먹,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죽고 싶어서 굶기 시작했다는 고백.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김 씨의 바람과 설움이 섞인 표정들을 기록하며 앞으로의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김 씨와 나는 종종 주민센터에서 그의 집까지 함께 걷습니다. 그는 자연스레 내게 엄살을 피웁니다. 나는 조금 떨어져 걸으며 발걸음과 손짓, 입은 옷을 살핍니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따라 지으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의 집 앞 공원에 다다르면, 함께 계획한 일들의 진행사항을 확인합니다. 김 씨에게 지원된 모든 자원은 그가 요구하고, 내가 제안한 것 중에서 결정됩니다. 때론 함께 상담을 받고, 때론 각자 역할을 정해 움직입니다. 그동안 김 씨에게는 이른바 복지 생태계가 조성됩니다. 그래서 그는 본인이 이용하게 된 서비스들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 못지않게 알게 되었지요.


  “이제 밑반찬은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많지 않은 맞춤형 급여를 조금씩 저축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우리의 목표인 재활치료 후 재취업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7개월간의 통합사례관리를 종결할 때가 가까워져 온 것이었습니다. 어깨만 좋아지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공동사례관리자인 복지관 팀장님께 연락해 그의 말을 전했습니다. 김 씨에게도 전화를 걸어 다음엔 복지관 팀장님과 함께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동안에 함께 한 일들을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비스 점검을 위해 김 씨에게 지원된 목록을 정리해봤습니다.

    

· 주사례관리기관(맞춤형복지팀), 공동사례관리기관(복지관)
· 정서적 지지(맞춤형 복지팀, 복지관/수시), 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맞춤형 복지팀/1회)
· 맞춤형 급여 신청 및 수급자 관리(주민복지팀, 제주시청/수시)
· 응급의료비(복지관/1회), 검진비(맞춤형복지팀/1회), 긴급의료비(S병원 사회사업실, 제주시청/1회)
· 영양식 및 밑반찬 지원(복지관/주1회, H생활협동조합 및 G푸드/부정기)
· 진료 동행, 치료 및 수술 계획 논의(맞춤형복지팀, S병원 정형외과/3회)
· 입퇴원 지원(맞춤형복지팀, 복지관/2회), 난방용품 및 김치(대한적십자사/1회)
· 일상생활용품 지원(마스크, 손소독제, 화장품, 화장지 등-맞춤형복지팀, 복지관/부정기)

    

  김 씨의 이름이 적힌 파일을 펼쳐, 서른 장이 넘는 서류들을 정리하고 나니 순간 목이 막혀왔습니다. 참아왔던 감정들이 쏟아질까 봐 입을 막고, 짧게 숨을 내뱉었습니다.

  누군가의 바람과 설움을 들어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의 엄살은, 아무리 그와 떨어져 걸어도 자석처럼 내 마음에 달라붙습니다. 덕분에 이 일을 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에서 사실만 걸러내는 기술이 늘었습니다. 표정을 묘사로, 감정을 단어로 포착해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야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사례를 공유하고 보고서를 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말, 제주도엔 종일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환기를 시키려 창문을 열자 황소바람이 방안 곳곳을 시끄럽게 두드렸습니다. 뉴스에선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에 걸쳤다고 했습니다. 장마가 지나면 폭염이 기승할 거고 곧 단풍이 물들었다 질 겁니다. 그러다 눈이 내리는 날도 오겠지요. 그동안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들과 함께 떠나고 다가오는 계절을 안부 삼아 물으며, 나는 또 조금 떨어져 걸어갈 것입니다.

  


  단풍은 장마를 견딘 후에야, 봄꽃은 눈보라가 지나간 후에야 만날 수 있어 그 의미를 갖습니다. 희망이 가치 있는 이유는 절망의 순간을 견뎌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난 50여 번의 바람과 설움들은, 인생의 계절 속 장마를 만난 사람들의 사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겨를도 없이 한파에 갇힌 이들이지요. 나는 그 절망이 지나갈 때까지 함께 버텨주는 것뿐입니다. 통합사례관리사인 나는, 우산과 외투를 챙겨 걷는 사람입니다. 떨어져 걷는 길의 위로, 그 길의 끝에 우리의 바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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