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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성 Sep 26. 2021

돈의 속사정

많고 적음을 떠나 이야기는 계속되어야지

휴대폰으로 너트뷰를 켜면 자주 시청한 영상과 연관성 있는 것들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 영상으로 올라온다. 누군가 무엇에 빠져있는지 궁금하다면 이것을 보면 개인의 날 것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한다. 내겐 재테크, 자기개발과 관련된 영상이 대부분 차지한다. 대화에서 돈은 빠지지 않는 익숙한 소재가 되어 외면할 수 없고,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마치 영웅의 일대기처럼 우리 마음을 웅장하게 한다.


꼬일 대로 꼬인 커리어, 이거라도 없으면 큰일날 것처럼 아등바등 살다가도, 여기저기서 부동산, 주식으로 큰돈 벌었다더라 이야기가 들리면, 뒤도 안 돌아보고 지금 일 그만두고 따라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그렇게 몇 해를 걸쳐 다른 사람들의 성공담을 훔쳐본다. 나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라고 격한 핑계를 댄다. 고민만 하는데,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돈은 사람을 여유롭게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돈만 한 옷이 없다. 나이가 들 수록 돈이 더 필요한데, 돈돈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식전과 식후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극이다. 남들 다 있는 것 나만 없으면 그렇게 가지고 싶다가도 막상 돈이 마련되면 구매를 망설인다. 구매력이 소망하던 물건의 가치를 크게 상회하면 나를 끌어당기던 물건의 매력은 사라진다. 모순되게도 돈이 사치를 억제한다. 부자들은 작은 돈의 지출에도 계획적이고, 물질 너머의 가치를 보려 한다. 반면 가난할 때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가치보다는 바로 드러나는 멋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지갑은 아래에서 먼저 열린다.



어떤 젊은이들은 더 이상 돈을 저축할 이유를 상실했다. 근 몇 년 간 발생한 급격한 자산버블에 탑승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다. 근로소득만으론 수도권 내에 내 집 마련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알게 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양보보단 적극적으로 현재를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은 모든 세대를 아우를 만큼 다양하지만 스포츠카는 나이가 어릴 때 탈 수록 효용이 크지 않은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멋쟁이가 많아질 것 같다.


돈에 대해 글을 써 내려가며 떠오른 기억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가난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는 나와 17년을 함께했다. 단 한 번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술과 담배에 찌들고, 오랫동안 씻지 않아 악취가 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평생을 원망했던 사람이 요즘에는 다르게 기억되려 한다. 그저 술 담배만 찾던 사람, 그것만 있으면 조용하게 하루를 보내던 사람으로 말이다. 자식의 생일날 이불장 아래서 동전 몇 개 긁어다 쥐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던 소박한 사람.


어떤 일이 한이 되면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 그런 일이 우리 집에도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 마흔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한 그와의 시간을 돌아보는데 1분이면 넉넉하다. 도무지 추억할 만한 일이 떠오르질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었으니 "어머니 잘 모시고,  앞으로 용기 내어 살아라."는 조문객의 위로의 말을 들었다. 어려운 우리 상황을 대부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몰랐다. 그저 단명하여 '불쌍한 OOO'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아버지와의 과거 기억만을 잠시 안주 삼을 뿐이었다. 장례식을 마친 뒤 친척집에 모였는데 어머니가 없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남편이 죽었는데, 장례식비 한 푼 안내더라." 이 상황에도 돈타령이구나.


가난하니 우리를 업신여기는구나. 가까운 사람의 속일수록 헤아리기 어려운 법. 막연한 돈에 대한 갈망은 어린 시절부터 강했구나 싶다. 결혼하고 곧 아이가 생긴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세상을 이해하려 하니 지금의 속도와 방향으로는 기대하는 성공은 어렵겠구나 생각한다. 지금은 현실적인 판단을 기초로 움직인다. 내가 일을 그만두면 당장 대출금을 포함한 고정비를 제외하고 얼마의 생활비가 필요한가. 그나마 가지고 있는 커리어를 포기하고 새로운 길로 접어들 때 얼마간 그 시간을 감내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어디로든 현실 밖으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제대로 된 자세라 자위한다.


어릴 적 우리가 선명히 기억하는 부모님의 나이와 비슷해졌다. 그들이 밟아온 길을 걷고, 이제 함께 나아가고 있으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동행할 수 있다. 우리를 앞서 살아온 그들의 발자취에서 고단함과 불안함, 때론 빛나는 희망을 느끼며 공유할 수 있는 지금이 묵은 때를 제거하고 다시 현실을 보아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돈은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그 자체로 목적이 되도록 두고 싶지 않다. 우리의 궁극적인 방향은 내면에 고유한 성질을 소중히 여기고 다루며, 그것을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 믿는다. 돈을 핑계로 삶의 행복을 미루는 것은 하수다. '돈 때문에'라는 핑계를 대기엔 스쳐간 기회와 의미 없이 보낸 시간이 너무 많다.


-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다시며 정년이 하루라도 더 늘어나길 바라시는 어머니. 그 묵묵함의 반만 닮았더라면.

/ `21.09.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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