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살

by 여명

부드럽고 윤기나는 갈색 목덜미에 콱

붉은색 잔흔을 남기는 도장을 찍는다

온통 차가운 숫자들로 범벅된 세상

붉은 색은 정열의 색이 아니었던가

숫자들의 세상에서 붉은색은 냉혹할 뿐


나열하고

부여하고

수여하고

그 모든 것이 딱딱하게 그어진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선에 달려있다


계산할 수 없는 것을

계산하려는 욕망인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길조차 측량한다


내 목덜미에도

얼룩덜룩 잔흔이 가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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