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악몽 그 사이 어딘가
그래도 잘 하고 있는거야, 하고 되뇌이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불안과 우울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밤이 싫은 이유는 간단합니다.애써 눌러둔 모든 불안과 우울이 물 만난 듯 터져나오는 시간이 밤이라서, 잠을 청해보려고 누우면 끝없는 악몽이 시작되는 시간이라서요.매일 밤 허덕입니다.혼자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발악하다보면 땀에 흠뻑 젖은 채 일어나곤 하니 나아져보려 모든 방법을 동원해봤습니다.
최근에 그래도 웃을 일들이 많았습니다.나아지려 할 때 꼭 날 건드리고야만 하는 일들이 또 생겼지만,그럴 때 옆에서 다독여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혹여나 내가 불편해할까봐 본인들의 이야기를 기꺼이 꺼내놓고, 내가 있어 이 행복한 시간이 생기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냐며 다정한 말을 한가득 해주는 사람들 덕에 그래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습된 불행은 행복조차 맘껏 누리지 못하게 만들곤 합니다. 어떻게든 움직이고 맛 본 행복은, 사라지고 나면 더 큰 상실감만을 남길 뿐입니다. 몰아서 며칠을 내리 잠만 자고 나면 이 모든 일들이 바뀌어 있을거라 기대하며 잠으로 도피를 해봐도, 결국 눈을 뜨면 악몽과 구분이 안 가는 현실만이 존재합니다.
나에게 준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알 때마다 너무 괴롭습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스럽고 대단한 사람으로 봐주었던 그 눈에서 총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정말 똑똑하고 말 그대로 총명했던 입에서 아이같은 울음이 터져나오고 어른들이 이래서 미안하다며, 내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서 미안하다며 이야기할 때,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학교에서,어머니에게서 이렇게 배우지 않았다며 사람들이 왜 다 이러냐고 우는 모습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성인이 되고 정말 오랜만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가슴이 저미는 것만 같아서 밖에 나가 한참을 서 있어야 했습니다. 난 이럴때면 세상이 싫습니다.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하곤 하는데, 이 다짐이 지성인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내가 아는 지성인이 현실과 그 현실의 부정적인 면에 찌든 사람들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볼 때마다 세상이 너무나도 싫어집니다.
모두가 지성인인 세상도, 모두가 지식인인 세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식인이어도 지성인이 아닐 수 있고, 지성인이어도 지식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선하지도 않습니다. 본인의 이익만을 위해 탐욕적으로 사는 사람이 선한 사람보다 더 많지요. 탐욕적인 사람에게 선한 사람이 피해 입는 것을 보고, 결국은 다들 이기심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선이 승리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은 심지가 곧을 뿐, 악보다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본 모든 선한 사람은 사랑 앞에 기꺼이 본인을, 본인의 이익을 포기하곤 했기에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더군요.
가끔은 원망스럽습니다. 내가 모두의 엄마가 된 것 같을 때, 어린 시절부터 받고 싶었던 감정들이 나에게는 닿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알면서도 또다시 붙잡혀주고 마음을 열고 상처를 받고는 한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아무리 울고불고 설움을 토해내도 이 해묵은 감정들은 해소가 되지를 않습니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혼자 자는 것이 두려운 어린아이에 멈춰 있는 것만 같은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도대체 언제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두려움에 떨며 잠에 들지 않아도 될지, 도대체 언제쯤 약이 없어도 가슴에 통증을 느끼지 않고 손을 떨지 않아도 될지 궁금한 날이 있습니다.
평안한 밤이 조금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