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을 공유하는

힘들어 날 세우는 고슴도치

by 여명

유달리 날이 서는 날이 있습니다. 속으로 꾹꾹 눌러 삼키던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면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됩니다.혹여나 미처 감추지 못한 감정들이 튀어나올까봐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다보면,자연스레 더 예민해지게 되더군요.가끔가다 감정이 터져나오려 할때마다 안간힘을 씁니다.근거 없는 외로움과 불안,우울함을 전부 내보이는 것은 나에게도,상대에게도 좋지 않을듯 하여 누르고 또 누릅니다.


혼자 적막한 밤에 덩그러니 남겨져 잠을 못 이루다 보면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채웁니다.복작거리는 머리 속에는 쓸데없는 불안들이 가득하지요.내가 속에 꽁꽁 감춰둔 창피한 불안들은 밤마다 꿈에 나와 날 괴롭힙니다.일어나지 않은 일들이기에 불안이라는 감정 혹은 상태 자체는 실체가 없습니다.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도 뜻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몇년간 계속해서 감추고 감추다보니 이제는 정말 능숙합니다.내 불안도 어디까지만 보여줘야하는지 알고,우울도 어디까지가 드러내도 괜찮은지 알고 있습니다.정말 바닥을 칠 때 가끔 쏟아내긴 하지만,평소에는 겹겹이 포장해둡니다.다행히도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의 우울과 불안을 약점이나 단점으로 보지 않지만,여전히 굳이 추한 모습을 꺼내 보여주고 싶지는 않습니다.엉엉 울면서 문제집을 찢던 순간들과 죽으려고 별 짓을 다하던 순간들은 아름답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입을 잘근잘근 씹는 습관이 생겼었습니다.입 안을 꾹 눌러 씹는 것은 밖으로 티도 안나는데다가,당장의 고통으로 무언가 잊거나 솟구치는 불안을 일시적으로 잠재울 수는 있었으니까요.여전히 불안하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반지를 빙글빙글 돌리고 입안을 씹습니다.물론 명상도 도움이 됩니다.하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한 진정책은 다른 작은 고통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꽤나 나아졌다고 생각하다가도,정말 갑자기 숨이 턱턱 막히는 우울과 불안이 찾아와 머리가 아플때가 있습니다.그냥 내가 믿는 누군가에게 푹 안겨 엉엉 울고 마음껏 응석 부려보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릅니다.시간이 지나고 해가 갈수록 그럴 기회가 적어진다는 생각에 더 슬퍼하는 것일지도요.


믿고 안기며 체온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온 힘을 다해 잘해주는 것은 어떨까요.후회와 미련은 한 점도 남지 않도록.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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