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란

가장 조용하고 강한 것

by 여명

다정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대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그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계속 곱씹게 되는 말이더라구요.가만 생각해보면,다정하게 사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예민하게 화를 내는 일은 늘 쉽지만,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다정한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인간관계에서는 기버(giver)와 테이커(taker)가 있다고 합니다.기버들이 있기에 보다 더 다정한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지요.다만,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인간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습니다.그 사이 묘한 경계를 맞추며 적정 선을 지키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내가 해준 것으로 행복한게 좋고,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날 행복하게 해서 챙겨주고 잔소리하고 가능하다면 도와주는 것을 좋아합니다.문제는 그러다보면 나 자신은 뒷전이 될 때가 있다는겁니다.나 자신을 못 챙기는 것도 문제지만,무엇보다도 상대방을 너무 이해해주다 보니 내 감정은 등한시하게 됩니다.

네가 이러이러한 것은 이해하지만 나는 이런 부분이 속상했다고 이야기한다 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화내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지레 두려워 한 발 더 속으로 들어가고는 합니다.이해 가는 부분이니 내가 한번 더 속으로 삭히면 따로 문제가 일어나지 않아서요.


예전에는 정말 날이 서 있어서 항상 예민한 표정과 공격적인 말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어느 순간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내 모습이 싫어 꾹꾹 누르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이를 꽉 물고 누르면 적어도 겉으로는 온화해질 수 있었습니다.그러다 보니 점점 화를 내는 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 부당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싸우는 일은 전혀 두렵지도 않고,쉽게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가까운 사람에게 속상한 일이 생기면 그저 꾹꾹 눌러 참다가 한번에 울며 터트리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내 다정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내가 다정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같은 다정을 바라면 안 되는걸 알면서도 그게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상대방의 다정은 나와 방식이 다를 수도 있고, 어느때에는 상대방이 너무 지쳐 다정할 힘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감정에 민감한 편이라 세세한 변화 하나하나에도 반응하는 편입니다.말투의 조그마한 변화도,표정의 미묘함과 목소리의 세기까지 가까운 사람에게서는 거의 대부분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그러나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학습하는 것이 꽤나 오래 걸렸습니다.내가 이만큼 예민하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 모든 것을 눈치 채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모두가 같은 일에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나의 은사님은 늘 나의 다정과 다양한 감정을 걱정하십니다.다채로운 감정들은 나의 장점이지만 살뜰히 남을 챙기는 다정함과 그 사이에 묻어나오는 다양한 감정들,그리고 나만의 줏대이자 고집은 날 아프게 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요.날 늘 철학적인 아이라고 말씀하시는 은사님께서는 내 다양한 생각들이 나 자신을 향해 후벼파는 순간 견디기 힘들거라며 늘 걱정하십니다.


인복은 좋아 주변인들도 각자의 방법들로 너무나도 다정한 사람들이지만,은사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끔은 실감하곤 합니다.나에게 다정해지는 것이 우선인데,늘 당연한 것이 왜 가장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다정한 세상을 만들어가며,본인 스스로에게 가장 다정해지면 좋겠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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