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아트컨설팅, 서울역 노숙자 봉사단, 그리고 마주한 어떤 이면들
꽤 오래 전 일이지만, 짧은 기간이나마 북촌에 있는 자그마한 아트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에는 대표님과 저 단 둘 뿐이었지요. 어느 아트콜렉터의 부탁으로, 미술작품을 배달하는데 동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작품 운송 전문업체 직원과 대표님 사이에서 조금은 불편하게 트럭 앞자리에 앉아 작품을 싣고 성북동의 어느 주택가로 항했습니다. 털털털 비탈길에 흔들리는 트럭을 타고 달려 도착한 곳은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집처럼 아주 높은 담벼락 뒤에 있는 꽤 큰 규모의 집이었습니다. 작품 운송 업체 직원이 트럭을 그 앞에 대고 기다리자 검은 세단이 한 대 들어왔고, 관리가 잘된 피부와 머릿결을 가진 우아한 차림새의 여성이 차에서 내렸습니다. 저희 대표님은 비교적 젊어보이는 그녀를 ‘이사님’ 이라고 불렀습니다. 운전기사로 보이는 남성분이 트렁크에서 꺼낸 몇 가지 짐들을 들고 이사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사님과 대표님이 말씀을 나누시는 동안, 저는 일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내어주신 시원한 매실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거실 통창 앞쪽에 펼쳐진 드넓은 정원에 감탄했습니다. 보기 좋게 다듬어진 나무들하며 계절에 맞는 예쁜 꽃들이 싱그럽게 피어있고 아무것도 뷰를 가리지 않는 탁 트인 전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명동성당 앞뜰에 앉아있다가 우연히 만난 수녀님의 초대로 노숙자 점심 봉사에 참여해본 것입니다. (심지어 저는 명동성당에 다니는 신자가 아닙니다.)
그날은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장마철이라 아침부터 보슬비가 오고 습도는 거의 100퍼센트에 육박했습니다. 서울역 근처에 수녀님께서 점심 준비를 한다고 알려주신 장소를 찾아 골목길을 헤메는 동안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체질인 제가 미친듯이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겨우 장소를 찾아갔더니 무척이나 낡아보이는 집안에서 수녀님과 자원봉사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모여 계셨습니다. 당연히 에어컨은 없었습니다. 그분들은 더위와 싸우며 불 앞에서 계란후라이를 만들고 요리를 했습니다. 나중에 서울역 곳곳에 도시락을 나누어줄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곳들을 방문했는데, 평소라면 별 생각 없이 지나쳐버렸을 풍경을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어디서 구한 것인지 쌈짓돈을 털어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혼자 망연자실 앉아있거나 누더기 같은 것들로 이어붙인 임시 천막 같은 곳 밑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이는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맨 바닥에 돗자리나 하다못해 신문지 같은 것도 없이 그냥 누워있는 남자였습니다. 그 옆에는 왜소증을 앓고 있는 듯한 아주 작은 남자가 허공을 바라보는듯한 표정으로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어쩐지 목적지가 없어보인다고나 할까요.
“저기 저 사람도 우리 음식 배식할 때 오는 사람이에요.” 저를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안내한 남성분이 말했습니다. 그 분도 한때 노숙을 했지만, 지금은 신부님과 수녀님을 도와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말고 대합실 쪽으로 가면 좀 더 화이트칼라 출신의 노숙자들이 있어요. 점심 배식을 하고 있으면 그런 분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누가 볼 새라 조용히 다가와서 며칠 동안 밥을 먹지 못했다 하면서 도시락을 하나 줄 수 있냐고 해요.”
노숙자 그룹에도 서울역을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저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 여름에 성북동에서 보았던 이사님의 세상과, 최근 서울역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던 노숙자들의 세상, 그리고 저의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요.
무언가 극단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이상하기도 하고 착찹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단순히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누어서 시시비비를 따지고자 함이 아닙니다. 단순화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장강명 작가가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한국사회에서 발생한 계층적인 갈등과 그 모순을 다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책이 발간된 1970년대와 지금 가장 다른 것은 난쟁이의 세계가 아니라 그 반대편 같다. 전에는 선명하게 보였던 거인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흐릿하다. 간접 고용, 플랫폼 노동 현장에서는 누가 누구를 착취하는 걸까. 자영업자를 착취하는 사람은 고객인가, 그 자신인가, 경쟁 점포인가, 인터넷 쇼핑몰인가.
몇 백 미터 떨어진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하면 영세한 가게가 잘되는 게 정말 맞나. 서울 강남 주상복합건물 전망 좋은 층에 사는 그 사람, 혹은 반도체나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 많이 하는 그 대기업이 거인인가? 그런데 왜들 ‘잘사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이 심성이 곱다’고 말하고 대기업 직원이 되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 걸까. 거인은 구조 속에서 숨은 듯 한데, 사회의 문제의식은 안이한 이분법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장강명, <미세좌절>, P.330
“내가 잠시라도 어떤 사회 시스템에 간여한다면, 그 시스템 전반이 공정하고 정의로운지,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을 고민하다보면 우리는 금세 무력감에 빠진다. 세계는, 현대사회는, 너무 복잡하다. 우리가 모든 산업부문의 근로조건과 하청 구조에 대해 샅샅이 공부하고 자신만의 견해를 지녀야 하는 걸까? 온실가스 배출이나 동물 실험, 이른바 ‘공정 무역’ 같은 이슈에 대해서도? 하지만 그게 과연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인가? 공부하려 한들, 그 실태가 다 조사되어 드러나 있기나 한가?
누군가는 그런 문제를 조사하고 있을 테고, 그 결과를 통해 법이나 협약이 개정되겠지, 나는 그 법이나 충실히 따르면 되지, 하다가 혹시 그게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의 논리 아니었나 싶어 불안해진다. 전체 시스템이 사악할 때 “나는 정해진 법대로 따랐을 뿐’ 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평범한 악’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한다.
이쯤에서 어떤 태도가, 어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적당히 타협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최소한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그게 제일 무난한 마무리인 것 같은데, 그런 주장도 나는 가끔 영 비겁하게 느껴지는 거다. 결국 한 일은 아무것도 없이, ‘나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는 자기만족만 얻는 것 아닐까? 그런 엉터리 우월감은 질색인데.”
장강명, <미세좌절>, PP. 31-32
감히 첨언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날 만난 봉사자들 중에는 고등학생 남녀 친구들도 있었고, 저보다 젊은 아기 아빠도 있었습니다. 그 분들 중에는 꾸준히 참여한다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 경험으로 새삼 깨달은 건, 내가 아는 세상은 결국 내 주변을 통해 본 작은 일부일 뿐이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의 등불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