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동네 아파트 단지 근처를 지날 때 였습니다. 화단에서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어느 꼬마 아이가 엄마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아이가 가리킨 곳에는 빨갛고 노랗고 분홍빛인 튤립들이 피어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평소에 늘 보고 지나치던 곳인데 그 아이의 눈에는 그 꽃들이 신기해보였나봅니다.
생각해보면 어릴때는 참 신기한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서 엄마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뿐인가요. 어릴때는 왜 그렇게 뛰어다녔는지 별 것도 아닌 일에 신나서 골목길을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궁금한 게 별로 없어지더군요. 주입식 교육 때문일까요? 내가 알고 싶은 것보다 무작정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고, 흔히 안전하고 좋은 길이라고 말하는 길을 가기 위해 온 힘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작은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실 작은 것들은 시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나중에 큰 사람이 되라고 하지, 작은 것들에 기뻐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잘 안 하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니, 나이가 들수록 아이처럼 작은 것들의 경이로움을 알아차리는 것이 거의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을 성취하기에도 바쁜 세상이라고 모두가 소리치는 세상 속에서 작은 것들에 귀를 기울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야망도 없어보이고 말이죠.
이해인 수녀님께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좋은 시란 천 사람이 한번 읽는 시보다 한 사람이라도 천 번 읽는 시”라고요. 세상에 크고 넓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멋진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수녀님은 “지혜의 심지를 지닌 작은 초가 되고 싶다”고, “세상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작은” 무엇이 되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마음 속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욕심이 작은 위로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고, 점점 강퍅한 사람으로 굳어갈 때쯤, 동네 어느 주택의 담장 위로 붉은 장미넝쿨이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작은 빛이 스며들듯 마음 한구석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꽃을 피우라고 독촉하는 것도 아닌데 철마다 새로운 꽃들이 알아서 피고 나무에 잎사귀가 돋고 우거지는 과정이 신기합니다.
욕심으로 흐릿해진 두 눈에 아이 같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렌즈를 장착할 수 있길 바라며,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나눕니다.
작은 기쁨
이해인(시인)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밤에 눈을 감으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자꾸만 부르다 보니
작은 기쁨들은
이제 큰 빛이 되어
나의 내면을 밝히고
커다란 강물이 되어
내 혼을 적시네
내 일생동안
작은 기쁨이 지어준
비단 옷을 차려입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고맙다고 말하면서
즐겁다고 말하면서
자꾸만 웃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