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부서진 곳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by 구키

지금은 삶의 질문에 답할 시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는 것이다.' 저는 이 말의 뜻을 마흔이 거의 다 되어서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그전까지도 크고 작은 어려움들은 있었지만 그즈음에는 강도가 다른 큰 역경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바랬던 삶의 모습이 아니었고, 노력도 별 의미가 없는 아주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어찌나 힘들었던지, 어느 아침 심리상담도 예약해놓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몸이 일으켜지지 않아 정말 엉금엉금 기어다니다시피 하며 겨우 준비해서 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시간이 지난 후에는 큰 보상이 주어졌을까요?


인생은 참 오묘합니다. 그 후에 뜻하지 않은 계기로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제부터 편안한 날들이 시작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불운으로 탈바꿈하여 또 한 번의 폭풍우가 찾아왔습니다. 그때는 정말, 오랫동안 물 속에 있다가 겨우 수면 위로 숨을 쉬러 나왔는데 누군가 제 머리를 물 속으로 다시 처박아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삶은 내가 계획해 가는 것보다, 삶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을 준비해야 할 때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책 <사람을 안다는 것>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잘 알려면 그가 인생에서 고통스러운 상실을 경험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그 경험을 한 뒤에는 자신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알아야 한다.’고요.


제 생각에도, 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크게 인간적으로 성장할 때가 바로 고통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도 그 시간을 환영하지는 않겠지만요. 편안한 환경에서는 삶에 대한 성찰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런 안온한 날도 살면서 며칠 안되겠지만 말입니다.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


저는 아직도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고통의 경험을 하고 나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라는 분노에 가득 차 그 화살이 자신에게 가고,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 되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함부로 대하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이전에 만나 본 사람들 중에는 힘들었던 기억이 낮은 자존감으로 연결되어, 타인으로부터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는 피드백이 오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고통의 순간이 닥쳤을 때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냐고 묻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인간적인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노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본연의 인간다움과 자존을 파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무엇을 이룬 사람보다 이 두 가지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 더 딱해보였고 별로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 생각했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고난 이후에 시작


최근 대전의 대표적인 베이커리 기업 성심당의 역경과 극복의 역사가 담긴 책을 한 권 읽었는데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치고 클라이맥스 앞에 갈등과 장애물을 두지 않은 것이 있던가.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장애물을 헤쳐 나간 뒤에야 비로소 주인공다운 주인공이 된다. 변화에 적응하고 위기를 극복했을 때 이야기는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사람들이 이야기의 갈등 구조에 몰입하는 이유는 현실 자체가 갈등의 연속이며 한 사람, 한 조직, 한 공동체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 또는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 여정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도 달라진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PP. 119-120


진짜 이야기들은 고난 그 후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전까지 저는 삶이 원하는 것이 계획을 세우고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삶은 ‘예상치 못한 일로 와르르 무너진 조각 더미들 위에서’를 전제로 요구하더군요. 다시 일어선 재건의 이야기 말입니다.


0.1그램의 희망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교통사고로 목 아래 전신마비를 얻게 되지만, 6개월만에 복직해 활발한 교육과 연구활동을 해 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구물리학자 입니다. 책장 한 장도 스스로 넘기지 못하지만 입을 움직여 컴퓨터를 조작하고 이것으로 전자문서의 페이지를 넘긴다고 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시고 희망이라는 단 하나를 남겨주셨다”고요. 그는 <0.1그램의 희망> 이라는 에세이집을 내기도 했지요.


가끔 이런 분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인가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그저 마음 약한 보통 사람에 불과하거든요. 제가 정한 기대에 못 미치면 스스로가 미워지거나 나를 곤경에 빠뜨린 사람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현실의 비루함 앞에 마음의 여유를 잃고 옹졸해지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저에게도 가끔씩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어느 봄날, 눈물로 얼룩진 눈으로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보았습니다. 이 눈물이 눈부신 꽃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힘겨운 현실의 버거움 때문인지 구분이 잘 안 갔지만요. 그 때, 한치 앞도 안 보이지만 희망을 보고 싶어하고 그것을 향해 한번 나아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작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도 대단한 것이 보여서 사는 게 아니에요. 그저 0.1 그램의 희망 때문에 사는 겁니다. 그러니, 마음 속 아주 희미한 소리라도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놓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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