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가 원하는 것을 가장 잘아는 것은 기업이다

반도체 산단 이전 관련.

최근 반도체 공장을 용인에서 서남부 지역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강력했었다. 이른바 '반도체 인력 남방한계선'인 용인보다 훨씬 남쪽으로 공장을 이전해도 인력 확보에 문제가 없다는 낙관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제조업 인재 풀의 복잡한 구조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내놓은 성급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제조업은 단순 노동력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개발과 설계를 담당하는 고급 인력부터 원자재 이송 같은 단순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까지, 여러 층위의 인재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생산이 가능하다. 단순 업무일수록 인력 확보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복잡하고 추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인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개발이나 설계 부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산 현장에서도 일반 직원보다는 반장이, 반장보다는 과장이, 과장보다는 부장이 더욱 복잡하고 추상적인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제조업에서는 시간이 곧 매출이고, 불량률은 수익에 직접 반영되기 때문에 경험과 문제 해결 능력은 생산 현장 모든 층위에서 필요하지만, 직급이 높아질수록 문제 해결 능력은 더욱 중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복잡하고 추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재는 언제나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제조업 분야의 고급 인재는 글로벌 차원에서 항상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


용인 반도체 공단을 서남부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회사가 이전하고 인프라 등과 급여를 충분히 제공하면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중요 인재들은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단순히 회사를 따라가는 선택지만 고려하지 않는다. 국내 타사로의 이직은 물론 해외 취업까지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


미국, 대만, 중국, 싱가포르 등은 고급 반도체 인재에 대한 강력한 수요를 가지고 있다. 현재 40~50대만 해도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비율이 높으며, 30대의 경우는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 더욱 보편적이다. 과거에는 언어 장벽이 해외 이직의 걸림돌이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낮아졌다. 한때 외국인 인재에게 중국어 교육과 통역을 제공하던 중국마저도 2020년대에 들어서는 엔지니어 층에서 자체적으로 영어 소통이 가능한 경우가 크게 늘었다. 여기에 스마트폰 통역 기술의 발전까지 더해져 언어 장벽은 더욱 낮아졌다. 음식과 문화 문제도 이제 해외에서 한국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유통망도 커져서 식재료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문화적인 면도 지금 30대~50대는 세계 문화에 꽤나 익숙해져 있으며, 특히 미국 문화에 대해서는 매우 친근하게 느끼고 있으며, 반대로 한국 음악, 드라마, 영화 등으로 해외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한국 젊은 층에게는 해외 진출이 더 이상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수준이 아니게 되었다.


과거 지방 산업단지가 조성되던 시절에는 직장이 평생직장이었다. 한번 입사하면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지방 근무도 충분히 수용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국내 제조업에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이 극히 드물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고급 인재들은 지방으로 이전하는 회사를 따라가기보다는 수도권에 있는 다른 기업으로 이직하거나 아예 해외로 나가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 이전은 단순히 주거지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자녀 교육, 배우자의 경력, 문화생활, 의료 접근성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언제까지 근무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런 위험을 감수할 인재는 많지 않다.


너도나도 인재가 중요하다고 외친다. 하지만 정작 그 인재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양식을 예상하기 위해 가장 노력하는 당사자가 바로 기업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기업은 자신에게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 그 인재를 어떻게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 인재 유출이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


제조업 인재 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막연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업에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정책 입안자들이 산업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탁상공론에 머문다면, 그 정책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공장 이전 문제는 단순한 부지 선정이나 인프라 구축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인재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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