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6
서브 작가 시절 일이다.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연예 뉴스를 제작하고 있는 옆 팀이 소란스러웠다. 다들 유쾌한 듯 웃고 있었지만 서로 민망함을 감추려는 과장된 웃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봤더니 옆 팀과 우리 팀 사이의 커다란 기둥에 표어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언니가 보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인 작가의 말.
“내가 없을 때도 이거 보면서 열심히 일해~.”
언니는 웃으며 말했지만, 앞으로 일 똑바로 하라는 명확한 경고였다. 후배 작가들은 ‘어머 언니~’를 외치며 활기차게 리액션했지만 자신들을 믿지 못하는 언니를 향한 원망과 쫄리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 해프닝을 굉장히 재밌는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 막내 작가로 함께 일했던 후배한테 그 일을 물었더니 기억이 나질 않는단다. 그때 나는 후배들을 단속하려는 그 메인 언니의 방식이 꽤 재기 발랄하다고 느낀 것 같다. ‘재밌는 언니네... 후후‘
메인 언니의 감시(?)와 관리, 감독하에 있던 시절. 언니가 자리를 비워도 우린 보이지 않는 CCTV가 달려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작은 것 하나도 언니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해도 될지 말지를 확인받았다. 그런 상황이 답답하거나 힘들진 않았다. 일을 하면서 배우는 입장이다 보니 본인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기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고 또 물었다. 물어보지 않아 생기는 작은 실수가 나중에 심각한 방송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템이나 섭외가 엎어지는(?) 비상 상황이 벌어지면 빠른 결단력으로 대안을 척척 지시하는 언니를 보며 이렇게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나. 이런 게 메인 작가의 능력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능력 있고 위트 있는 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메인 작가가 되고 보니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여전히 유머나 위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더니. 쩝. 게다가 여전히 ’ 언니‘가 필요하다. 지금의 나에게 ’ 언니‘는 마감이다. 작가에게 추진력과 긴장감을 부여하는 최고의 감시자. 방송이 나가는 날까지 천지가 개벽을 한다고 해도 죽을힘을 다 해 끝내야 한다. 문제는 이 마감이라는 ’ 언니‘는 자비롭지 않다는 것. 어떠한 조언이나 해결책도 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해내라고 밀어붙인다. 그래서 가끔 외로워진다.
나는 지금도 언니가 그립다. 채찍과 당근을 모두 갖고 우리를 조련시켰던 나의 메인 언니들... 살벌한 채찍만 있는 마감 말고, 당근도 줄줄 아는 다정한 언니들이 보고 싶다. 나에게 방송 일을 알려주고 함께 밤을 새우며 신나게 일하던 언니들이 있던 그 시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