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Dec 18. 2021

세탁기

세탁기, 가사

  미화된 제목을 달고 싶지 않았다. 오롯이 세탁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결혼 28년 차, 가장이란 수식어를 써도 과하지 않는 가장 고마운 존재, 세탁기에 대해 그간 느껴왔던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아무 생색 없이 그 긴 시간을 나를 도와준 존재가 있었나 싶다. 냉장고도 있고 청소기도 있고 그리고 가족들도 있지만 내가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은 단연 세탁기다. 말도 못 하고 생각도 없는 무생물인 세탁기에게 마음을 담아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세탁기를 만든 사람들에게도 그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별 이상한 사람 다 봤다고 해도 변함없이 세탁기에게 고맙다고 할 것이다.


    결혼하여 큰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는 거의 세탁기를 쓰지 않았다. 지금은 한해에 두세 개를 쓰는 세제를 그때는 십 년이 넘도록 세탁기용 세제 하나를 다 쓰지 않았으니 정말 세탁기를 쓰지 않은 편이었다. 그때는 어린아이들의 옷을 몸에 안 좋을 것 같은 세제를 써서 빨고 싶지 않아서 거의다 손빨래를 했다. 그러다가 차츰 아이들이 성장하여 세탁기를 사용하여 빨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자 세탁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었다. 어쩌면 내가 전업 주부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즉, 직장을 다니게 될 때부터 적극적으로 세탁기를 사용했던 것 같다.


  직장을 다니든 그렇지 않든 가사의 전부는 내 일이었다. 가족 구성원 누구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하던 일들을 나눠서 해야 된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저 하던 대로 당연히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했었다. 남편도 결혼생활 이십 년이 훨씬 넘어서야 처음으로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서 널어보았으니까  그것도 내가 많이 아팠던 까닭이었으니까 정말 가사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렇게 무던하게 독박 가사를 하다가 때론 힘겹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 혼자 생각했었다. '세탁기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살면서 이렇게 고마운 존재가 또 있을까?, 정말 고맙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 고마움을 이렇게 지면을 할애해서 표현하고 있다.


  생활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족을 위한 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된다. 예전에는 내가 아닌 대체할 수 있는 게 있어도 굳이  손으로 하려고 했다. 뭐든 내 손으로 해야 제대로 되는 것 같고 또 그렇게 하는 게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사람이기에 힘들 때가 있다. 힘들 때 힘이 되어준 무언가가 있으면 그게 무생물인 세탁기라도 고마움을 느낀다.


 슬픈 일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은 노화현상이다. 마음처럼 전처럼 그렇게 계속 열심히 그리고 잘할 수 없다. 미각도 퇴화되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마음과 갖지 않게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직장인이 퇴직을 하듯이 주부도 퇴직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그 가사를 나눠서 하려고 하지 않고 온전히 주부의 몫으로만 생각한다. 시중에 도는 말이 있다. 주부들이 생각하는 맛있는 음식은 남이 해준 음식이라는 말이 나돈다. 일 년에 기념일이나 그런 날 딱 한 번이라도 정성껏 음식을 해주면 나머지 364일은 힘들다는 생각 없이 온 정성 다해서 가족을 위한 음식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딱 하루도 내손으로 음식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속상함을 토로하지만 속 내면은 정서적 갈증이 모든 원인이 아닌가 싶다. 주부가 가사를 돕는 세탁기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데는 그 이면이 얼마나 홀로 쓸쓸한가?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힘들지? 내가 할게 좀 쉬어."이런 말을 할 줄 아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원한다. 인생의 가을이 오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면 얼마나 더 따뜻한 게 그립겠는가?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이라고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줬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종교인들의 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