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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Dec 22. 2021

나와의 대화

인생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즐기는 자는 운 좋은 자를 이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정작 살다 보면 머리도 좋아야 하고 노력도 해야 하고 또 즐기면 더더욱 좋고 거기에 운까지 좋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사람'이란 글자와 '삶'이란 글자는 거의 같은 글자이다. 'ㅏ'자가 하나이냐 두 개이냐의 차이 딱 그 차이이다. 사람의 삶이란 뭘까? 어쩌면 그렇게 명료하게 '희로애락'이란 글자를 만들었을까? '희로애락'의 반복? 그게 삶인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의 길이 조절을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인가 싶다. 그 과정 중에 노여움과 슬픔의 시기를 만날 때 그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 노력 중에 '머리가 좋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운이라도 있었으면 그래도 더 나았을 텐데.' 그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저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한 인간의 삶이 엮어지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나는, 왜?' 지금까지 살면서 그래도 스스로에게 '나는, 왜?'라는 나를 원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난 대체로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곰 같은 성품도 마음에 들어 하고 느끼한 걸 못 견뎌하고 담백한 걸 선호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유난히 칭찬을 좋아하는 것은 성장과정 중 무슨 결핍에서 비롯된 건가? 하는 의문을 품어보지만 그것 또한 단순한 내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생각하면서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칭찬과 단순한 성격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고 그러냐고 물으면, 힘들고 어렵고 그런 상황일지라도 진심 어린 칭찬 한마디만 건네면 뭐라도 해내기 때문에 나를 사용하는 아주 쉬운 설명서가 되어 주니까 나란 사람은 단순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약간 못마땅한 부분도 있다. 애늙은이 같은 성격이 그중 하나다. 지금은 우리 애들이 결혼하여 애만 낳으면 할머니가 되는 나이가 되었으니 애늙은이가 아니라 늙은이가 다 되었지만 나는 십 대 때부터 애늙은이 기질이 있었다. 그것 또한 성장 과정 중에 갖게 된 성격 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좀 고쳤으면 하는 성격이 있다. 그것도 애늙은이 같았던 십 대 때부터 스스로 자각한 성격인데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성격을 가졌다. 한때는 그 성격을 고치려고 무던히도 애썼었다. 노력 중에 해결책은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가르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배우자를 존경할 만한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누군가가 말했다기보다 스스로 느낀 건,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또한 스스로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한 건데 애늙은이 성격과 가르치려는 성격을 쉽게 변하지도 않으니까 고치려고만 하지 말고 활용하려고 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만큼 살다 보니 정말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살면서 우여곡절이야 없었을까만은 뒤돌아보면 정말 순항했다는 생각이다. 풍랑을 만나든 암초를 만나든 배가 뒤집어지고 목숨을 위협받는 경우들도 많다. 뭐라고 말할 수 없어서 운명론자처럼 운명에 돌리고 마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저런 경우들을 생각할 때 막연하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무슨 종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려울 때나 감사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조상님들이다. 어디선가 나를 위해 응원하고 계실 것만 같아서 늘 그분들께 기도하고 감사해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께 기도한다. 이 세상에 계시지는 않지만 그분들은 딸이고 손녀라는 이유로 돌아가셔서까지 바쁘실 거다. 매번 기도드릴 일이 있으면 그분들께 간곡하게 기도드리니 말이다. 그때마다 그분들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러고 보면 이제까지 내 삶이 순항하게 된 가장 큰 버팀목은 돌아가신 아버지, 할머니시다. 그분들 덕분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라는 생명을 부여받아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를 바라보는 가장 무서운 눈은 나다. 죽을 때까지 나와 또 다른 나는 계속 서로에게 말을 건다. "잘 살고 있는 거니? 너 그렇게밖에 못 살겠니?" 가끔은, "많이 힘들었지? 이만하길 다행이지?" 할 때도 있다. 계속 나와 내속의 나는 동행하면서 그래도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으로 걸어가게 해 준다. 그게 아마도 우리들이 이름 붙여준 '양심'이란 것이 아닐까 한다. 누군들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주위에 동행할 사람과 함께여도 좋다. 여의치 않으면 내 안의 나와도 대화를 나누면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잘 극복해 나아가는 게 인생이 아닌가 한다. 오늘도 아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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