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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Dec 25. 2021

인스턴트 인간들

직장생활

  우리가 외국인을 볼 때 나라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같은 동양인인데도 우리나라 사람, 중국인, 일본인, 필리핀인 등 그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가 있어서 구분이 된다. 백인들도 러시아인, 이탈리아인 그렇게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같은 민족인데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사람마다 좀 많이 다르다.


  특히 다른 사람이 다른 점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본인의 시선도 시간에 따라 다르다.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일 년 차에는 직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착하게 보인다. 이 년 차가 되면 부류가 나눠진다. 그대로 착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조금씩 보인다. 특히 승진에 눈이 어두워 얄팍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뜨인다. 그런데 정작 승진이라는 것을 쫓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승진을 못하고 묵묵히 본인의 할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은 승진을 한다.


  요즘은 AI까지 등장해서 도통 인간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으니 예전 감성으로 사람들을 바라봐도 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출산율이니 인구 감소니 걱정들이 많은데 시대의 변화를 볼 때 그런 걱정이 걱정거리인가 싶을 때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해왔던 일들을 거의 많은 부분에서 기계가 대신하고 있는데 예전처럼 많은 인간이 필요한가 싶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인간은 생산을 주도하기보다는 소비를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되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직장 속에서의 인간관계니 뭐 그런 80년대 감성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는 근원적인 감성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서 꼰대 같지만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쉽게 말해서 요즘 직장인들은 점점 건조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겨우 직장의 한자리를 차지해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일 년 차는 얼얼하게 일을 배워가면서 적응해 낸다. 그리고 일이 익숙해질 즈음 그때부터가 문제다. 직장은 일을 하는 곳이고 그 일한 만큼 급여를 받으면 그만인 곳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옛날 사람인 나는 이게 인간세상이 맞나? 인간미라고는 365일 중에 300일을 넘게 찾아 헤매도 찾을 수가 없는데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연신 물음표만 마음속에 몽글거리고 그리고는 아무런 내색도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적응해서 사는 척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뭐라고 딱히 할 말도 없기에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인간이 AI화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쩌면 AI를 더 정교하게 만들면 그들이 더 인간미가 있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다 보면 모래밭에 진주처럼 분명히 요즘 사람인데 천사가 강림한 것처럼 인성 좋고 착한 친구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친구를 만나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모른다. 그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워낙 요즘 친구들한테 놀라는 게 일상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의심을 할 때도 있다. 더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버전으로 무장된 영업용 얼굴인가? 내가 보는 모습이 본모습인가? 내 눈을 의심할 때가 있다.


  그들이 맞는지도 모른다. 직장에 왔으면 일을 열심히 하면 됐지 더 무얼 바라는 건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 간에도 금전이나 경제적인 문제가 섞이면 찰기라고는 하나 없이 해변의 왕모래 같을 때가 있는데 무슨 때아닌 인간 미니, 정이니 하는 것을 직장에서 찾으려고 하는지 내가 모순이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씁쓸한 얘기지만 90년대를 살아본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 찾으려고 하는 그 무엇들이 그때는 충분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 냄새나는 인간미 넘치는 직장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고 일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집 갖고 좋은 차 사고 좋은 것 먹으면서 좋은 곳을 여행하면 그게 우리가 바라는 마지막 종착지 일까? 살면 살수록 이상은 온데간데없고 잘 먹고 잘 누리는 게 잘 사는 것이 되어가는 것 같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목적이요 이유인 것만 같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데 그 사회적인 활동에서 삭막함만 가득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1990년대에 누렸던 인간미 넘치는 삶을 지금 2020년대에도 꿈꿔도 되지 않을까? 똑 같이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십 대를 보내고 대학을 졸업해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직장을 찾아서 그렇게 인간미 하나 없이 삭막하게 돈 버는 로봇처럼 그렇게 살기만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돈으로 누릴 것도 많다. 그렇지만 따뜻한 온기를 나누면서 서로 나누고 기대면서 인간미 폴폴 나게 살면서 느끼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이 세상에 인간미라는 단어 자체가 몽땅 증발하기 전에 작게라도 몽글몽글 어나길 바란다. 꼰대들의 질퍽함과 신세대들의 건조함이 조금씩 절충안을 찾아보는 게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뜻이 있으면 길은 반드시 있을 거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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