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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an 04. 2022

방황하는 영혼들

노년을 기획하자

  삼십 대 사십 대를 살아내면서 허기진 사람처럼 무언가를 배우려고 했었다. 실제로 끊이지 않고 무언가를 배우러 다녔다. 정말 짬짬이 시간을 쪼개서 내 이름 석자가 불리기를 바라면서 배우러를 다녔다. 딱 삼십에 대햑을 다녔으니까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육아와  병행하면서 계속 배우러 다녔다. 쉼 없이 십 년이 넘게 계속 배우러 다니면서 무엇이라도 좋으니까 생산적인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쉬운 말로 배우기 위해 돈 쓰는 것 말고 돈 버는 걸 하고 싶어 졌다.


  사십 대 중반쯤에 그렇게 숙원 하던 직장엘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소박한 직업을 찾은 것이다. 지금도 다니고 있는데 본업인 주부를 병행하면서 다닐 수 있는 이 직장은 수입이 좀 소박해서 아쉽긴 하지만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신발끈을 바짝 조이고 쉼 없이 준비해서 오늘까지 2022년을 준비하는 대 과업을 마무리했다. 코로나로 발생한 비정기적인 복잡한 잡무도 마무리되고 오늘은 참 보람찬 하루였다. 오십 대 중반의 내가 이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건 예측하지 못했었다. 내게 주어진 지금의 현실이 감사하다.


  아이 셋이 대학에 입학한 후로부터 서서히 나의 시선이 나에게 돌아왔다. 놀라운 우연이지만 내가 딱 오십이 되는 해에 큰 병을 앓았었다.  우리 집 막내가 수능을 보고 나서 알게 된 병이었다. 무지하게 답답한 나는 쉽사리 나를 돌보려고 하지 않을 것을 누군가가 알았다는 듯이 내게 큰 병을 주면서 나를 돌보게 만들었다.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스스로 건강을 챙기려고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 몸을 돌보라고 병을 주고 마음을 챙기라고 이곳을 알게 해 주고 어쩌면 이렇게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듯이 앞날이 펼쳐지는지 놀라울 뿐이다.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감사하지만 주변에 계신 육십 대 칠십 대의 어르신들을 뵐 때 살짝 나의 앞날과 오버랩되면서 약간의 걱정이 생겼다. 나만의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그분들은 참 무료해 보이고 목적이 없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나 혼자 생각이겠지만 눈동자마저도 초점을 잃고 방황하는 것만 같다. 자식을 다 키워서 품 안에서 떠나보내고 별다른 목적도 없고 희망도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서 보는 내가 다 마음이 허해진다. 무엇이든지 긴장감을 갖고 할 일이 있었으면 더 생기 있고 활기차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건강이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석양처럼 시간 속에 파묻혀가는 것만 같은 그분들의 모습이 정말 안쓰럽다.

 

  '반면교사'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지금 내게 보이는 주변에 계신 육칠십 대 어르신들을 보면서 떠오른 글자다.  내가 살아온 길을 자산 삼아 잘 준비해서 과거의 나보다 더 씩씩하고 활기차게 살아내고 싶다. 나의 미래를. 지금부터 내게 새로운 숙제가 생긴 셈이다. 나의 멋진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건강은 필수고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설레고 두근거리기 까지는 욕심내지 않겠다. 생기 있게 멋지게 살기를 원한다. 뜻이 있으면 길이 생길 것이다. 아직은 급할 게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욱 멋지게 해내면서 여유를 갖고 준비하면 된다. 망설이지 말고 용기를 갖고 꼭 무엇이라도 좋으니까 도전하는 나 이기를 원한다. 실천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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