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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an 07. 2022

유머 실종 사건

나를 찾아서

  유모를 찾는 것도 아니고 유머를 찾는단다. 병가면 이불속에 파묻혀 있을 것이지 무슨 유머를 찾겠다고 아침부터 설레발인지 모르겠다. 근 일주일간 초긴장 상태로 업무를 했었다. 워낙 중요한 일이고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었기 때문에 머리와 입은 괜찮다고 별일 아닌 것처럼 의연한 척을 했었으나 몸이 자동으로 아팠다. 심한 위경련을 경험하면서 약에 의존해서 아픔을 참아내면서 일을 했다. 일이 일단락되고 어제는 마음먹고 병가를 내고 병원행을 하여 한 보따리 약을 타 왔다. 어제 갑자기 감기까지 시작돼서 약의 양은 더 한 보따리가 되었다. 다섯 종류의 약을 먹고 이불속에서 이렇게 글을 쓴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으면 낫는다. 그런데 바삭해져 가는 내 마음의 변화가 불현듯 안타깝게 느껴졌다. 매사에 필요 이상 진지하고 불의에 필요 이상 정의로워지려고 하는 내가 보인다. 지금의 내 모습이 전부인 것처럼 익숙해져 가는 시점에 나는 정말 내가 지금의 내가 전부인가를 더듬어본다. 나는 원래 유머가 가장 원숙한 사람의 모습이고 여유스러운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눈에 보였던 유머스러운 사람이 김대중 정주영 노무현 이분들이었기에 그분들의 유머스러운 모습을 존경했었다.


  나란 사람은 어땠을까? 나는 범생이의 원단이었다. 지금도 그 모습이 어디 가진 않았다. 나를 가장 가까이서 보았던 엄마는 자식들 중에서 내가 가장 순했었다고 말씀하셨고 내 남편도 나를 순한 사람으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과연 그런가 그저 순한가? 하는 의문이 스스로 든다. 절대 순하기만 하지 않다. 불의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 어떻게든 바로잡으려고 한다. 다소 소리가 나더라도 말이다. 그건 순한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되돌아보면 언제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을까를 더듬어보았다. 무엇이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변화하게 만들었을까? 결혼 후 십 년이 넘어서부터 내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었지 않았나 싶다.


  이십 대에 직장생활을 할 때는 타 부서 직원들이 종종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우리 부서에 마실을 올 때가 있었다. 그분들은 내게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재밌게 하느냐, 왜 이렇게 웃기느냐?" 이런 말을 종종 하면서 자주 우리 부서를 찾았었다. 생긴 거와는 다르게 그렇다는 얘기였을 것이다. 얼굴은 진지한 범생이라고 쓰여있는데 의외라는 얘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둘째 셋째를 데리고 그림 그리러를 날마다 다닐 때가 있었다. 그때도 함께 그림을 그리던 분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 너희 엄마는 집에서 과외받니? 날마다 왜 저렇게 웃기다니?"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직장에서는 일보다 그림 그리러 다닐 때는 그림 그리는 것보다 더 재밌는 토크에 더 매력을 느끼면서 다녔던 것 같다. 그 정도로 내게도 유머라는 것이 장착되어 있었다.


  근 십 년 이상 내 모습 속에 유머는 없었다. 내가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찾을 길이 없다. 유머가 완전히 실종되었다. 그러면 그동안 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되었을까? 지금의 직장을 만으로 십 년을 다녔다. 직장이 원인일까? 그리고 그사이에 우리 아이 셋이 대학 입학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던 시간이 근 십 년이었다. 아마도 이 두 가지 원인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유머 없는 세상은 삭막하다. 유머 없는 나는 더 삭막하다. 찾고 싶다. 유머 있는 나를. 이제는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기를 쓰고 살지 않아도 된다.


  회복하고 싶은 나의 본래의 모습이 회복될까? 찾고 싶은 예전의 나의 모습이 되돌아올까? 참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유로운 나, 유머스러운 나를 어릴 적 내 모습을 되돌려야 찾을 수 있다니 슬프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무얼 그렇게 발버둥 쳤을까? 스스로의 모습까지 잃어가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어야 했을까? 나의 간절함이 나를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낳은 내 아이 셋을 정말로 간절하게 훌륭한 인재로 키우고 싶었다. 분골쇄신 딱 그 마음으로 우리 아이 셋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아이를 낳아 잘 기르는 것이 내가 태어난 이유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그들은 성인이 되었다. 그들을 온전히 그들에게 맡기는 게 지금부터 해야 할 내 일이다.


  부디 지혜롭기를 기도한다. 부디 내게 시선을 집중하기를 주문한다. 이제부터라도 본인이 좋아하는 원래의 모습을 찾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머리와 마음이 하나가 되어도 쉽지 않다. 의식적으로는 한계가 있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변해야 본래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주변에는 근심 걱정이 없어야 한다. 나의 노력도 필요하다. 필요 이상 걱정거리를 만들어 가면서까지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걱정 아니고도 다 잘 살아진다. 불필요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훌훌 털어버리고 잊어야 한다. 내가 여유로워지고 내가 유머를 찾는다면 내가 행복해진다. 그러면 내 주변도 더불어 행복해진다. 이제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고 있으니까 유머가 실종되었다는 것도 자각하게 되는 것 같다. 부드럽게 따뜻하게 풍요롭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종되었던 유머를 찾는 게 급선무이다. 어디 갔니? 돌아오렴, 유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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