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Feb 03. 2022

조급증

교육

  지금은 '조급증이 뭐더라?' 할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산다. 그런데 아이들이 한창 학업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는 곰 과인 나도 조급증이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 수 없고,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도 있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조급증을 체감하면서 살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목표점을 향해 달릴 때 조금만 더 빨리 그리고 열심히 하면 거뜬히 그 목표점에 도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조급증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피아제가 본인 아이들을 기르면서 인지발달단계를 4단계로 나눴다. 피아제는 아마도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대단한  이론을 발표하고 연구하였는데 나는 무얼 하고 살았는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런 대단한 학자와 비교하는 자유는 유머처럼 느껴질 정도로 스스로의 존재의 가벼움을 느낀다.


  아이 셋을 낳아 그 아이 셋을 훌륭한 인재로 기르는 게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생각했던 내가 그 정점에 있을 즈음에 느꼈던 나의 과오가 있었다. 그건 조급증의 결과로 빨리빨리 하기를 둘째 셋째에게 요구했었다. 그로 인해 둘째는 상당한 피해자다. 둘째는 태어나서 열 살 정도까지 '제가 내가 낳은 아이인가? 내 스승인가?' 할 정도로 남달랐다. 너그럽고 지혜로우면서 매사 주변을 챙기는 어른보다 더 어른 다운 아이였다. 엄마이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판단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아이를 겪어본 주위의 어른들이 이구동성으로 감탄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주관적으로 과장되게 판단한 결과가 아니다.


  문제는 열한 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올림피아드 문제를 엄마랑 경주하듯 풀고 영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영어 문법이나 독해 문제집을 풀었고 마치 음식을 안 씹고 삼키듯이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급증이 서서히 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부라는 걸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빨리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습관을 만들었다고 생각되었다. 모두 엄마의 조급증이 그 원인의 중심에 있었다. 중학교 일 학년쯤엔 정석을 펜을 사용 안 하고 눈으로 풀면서 그것이 마치 자랑거리인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었다. 천천히 차분히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만 생각할 수도 없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 첫째는 나의 공부 습관을 그대로 닮았다. 내가 항상 원리를 이해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갖아서 매번 첫째에게 같은 학습 습관을 갖게 했다. 그랬더니 국어 영어 수학 모두 그런 마인드를 갖고 문제를 해결해 버릇해서 지문이 많고 그런 경우 좀 시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어 그게 제한된 시간에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가 힘든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셋째를 기르면서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었다. 조급증과는 무관한 본인의 또 다른 세계관과의 사투를 한바탕 한 경우이다. 대학을 입학하고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대화를 나눴었다. "형이 네게 딱 맞는 수학학원을 소개해줘서 좋은 성과를 거뒀었지?"라고 다행이었다는 말을 했더니 셋째가 한 말은"학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를 포기해서 좋은 성적을 맞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셋째는 어려서부터 나 같은 보통의 엄마가 포용하기엔 엄마로서 많이 한계를 느꼈었던 경우였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속으로'내가 많이 부족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반 강제적으로 '사회의 약속'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면서 공부를 권유했었다.


  아이 셋을 기르면서도 제각각 많이 다름을 체감했었다. 학과 공부의 중심에 있을 때에도 내가 너무 조급한 마음을 갖고 아이들을 대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들을 볼 때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분명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는 마음을 속으로 갖게 되었었다. 특히 셋째의 경우가 그랬었다. 분명히 다른 아이들만큼만 하면 정말 탁월하게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었다.


  성장기의 아이들을 지도하는 입장인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었다. 조금만 더 갖춰진 엄마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그래도 부족한 엄마에 비해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잘 성장해줘서 고맙고 다행이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조급증을 버리고 여유를 갖고 아이들을 대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숨길 수 없다. 대학을 보낸 후부터는 전적으로 우리 아이들 인생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해쳐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제는 엄마로서 그들에게 필요한 건 믿음과 응원뿐인 것 같다. 그 포지션을 잘 지키면 뭐든 순리대로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하얀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