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Mar 15. 2022

나를 향한 돋보기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면 평소와 다른 느낌을 갖는다. 그렇게 여러 번의 변화 속에서 지금 나는 덩그러니 서 있는 나를 마주한다. 살아오는 세월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그리고 늙어가고 있다. 그런데 불현듯 그 많은 사람들과 또 그 많은 일들이 하얀 백지처럼 느껴지면서 그리울 것도 추억하고 싶을 것도 뭐 있을까? 싶어 진다. 많은 번민의 시간들그땐 그렇게 복잡하고 힘들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무 기억이 없다.


    무소유, 이 나이 되면 찾아오는 손님일까? 박깜박 기억나지 않은 내 나이를 수긍하는 또 다른 모습일까? 그토록 힘에 겨웠던 시간들도 내 마음속에 욕심이 일렁이었기에 겪어야 했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두려움도 건강하게 잘 살아보고자 했던 내 바람의 뒷모습이었던 거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이런 마음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고장 난 시계처럼 기억도 예전 같지 않고 얼굴도 몸도 중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좀 애처로웠었는데 점점 그 모습도 익숙해지고 텅 빈 나도 이제는 받아들여지는 걸 보면 새로운 나를 맞는 기분이다.


  노여워하지 않은 나도 나인가? 타다닥 타들어가는 건조한 나무처럼 경우에 맞지 않는 상황에 쉬이 노여워했던 나는 젊음의 표시였었던가 보다. 이제는 더 노여워할 것 같지 않다. '그래, 그럴 수 있지!'그런 마음이 내 속에 들어앉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나를 보면서 '허허, 성인군자 나셨네!'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욕심의 농도를 살짝 연하게 하면 의욕이 되는데 욕심이 사라져 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의욕이 사라져서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못 느끼게 될까 걱정이다. 백발의 노인들도 본인들의 앞날을 어떻게 살겠다고 '희망'을 노래하는데 다 산 도인처럼 무소유를 생활화할 것처럼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되니까 그 또한 걱정이다.


  하루도 아침 낮 저녁이 다르듯이 내 마음에도 그렇게 잠시 찾아오는 온도 변화 같은 것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잠시'라고 생각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마른 풀잎 위에 몸을 기대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무심한 듯 같이 기울어가는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기울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장중한 일 막이 끝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나의 일 막도 끝이 나지 않았나 싶다.  


  망망대해에 멍 때리고 있는 것만 같다. 물이 전부인 바다 위에서 갈증을 느낀다. 나 이래도 되는 걸까? 목적 없이 계속 멍 때리고 있어도 되는 걸까? 무언가를 새롭게 꿈꿀 수 있을까? 닻을 올리고 가열하게 달리고 싶어 질 때가 다시 올까? 욕심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아직도 털털 털어봐도 난 벗어날 수 없는 못 말리는 나다. 아직도 아직도 '자식' 난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만 내 속에 가득하다. 무소유니 도인이니 그건 허상이다. 인생 일 막이 아직도 진행형이다. 졸업하지 못했다. '나'를 향한 나의 마음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자식'만 생각난다. 들은 모두 독립했는데 나는 아직도 생각과는 다른 내 마음이 꿈틀대고 있다. 자식을 향한 기도, 그 마음은 거둘 수 없는 것 같다. 본업은 '자식 걱정하는 엄마'이고 그냥 '나'는 없다. 그게 언제까지일지 모르겠다.


  '걱정' 그게 삶의 동력인지는 몰랐었다. '아무 걱정 없다.'는 곧 동력을 잃은 거다. '무소유'니 '득도'니 하는 단어들은 나를 이 세상에 머무르게 하는 나를 위한 비상약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절절히 걱정하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나를 계속 존재하도록 하기 위한 스스로의 비책이 나를 연마기에 넣고 돌리듯이 나를 '성인'으로 만들어가는 '공정'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하는 습관이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중년의 끝자락에서 길 잃은 양이될 줄이야?!

 

  삶이 다 그런 건지, 나 자체가 '모순' 덩어리인지 모르겠다. 내가 못 말리게 사랑하는 '자식'을 이제는 마음까지도 독립을 시켜야 맞는데 내 마음은 그들을 붙잡고 있다. 놔줘야 된다는 것을 실천하려고 하면 밀려오는 공허함을 감당하기 힘들다. 등대 없는 항해처럼 하염없이 방황한다. 온전히 '그냥 나'이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이제 그때가 왔는데 기쁘게 맞이하지를 못한다. 바보다. 혼자 내 마음대로 방황의 상태에서 헤매고 있다. 새벽이라고 부르기도 이른 이 시간 홀로 '나'를  찾아 헤맨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도 노력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