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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r 19. 2022

칠팔십 년대 농촌생활

어린 시절

  팔십 노모는 딸을 위해 당신의 몸보다 더 큰 크기의 포대에 겨울 배추를 담아 보내셨단다. 친구 같은 지인은 내게 전화를 했다. 퇴근하는데 문 앞에 어머니께서 보내신 배추가 있다고 나눠줄 테니 나올 수 있겠냐고. 그걸 받아서 뜻하지 않게 김치를 담그기 위해 이 밤에 배추를 소금에 절여놓았다. 겨울을 잘 이겨내고 이 봄까지 견뎠으니 얼마나 귀한 배추인가.  나도 농부의 자식인지라 어머니의 마음이 배추 한 포기 한 포기에서 느껴진다.


  훌륭한 화가나 작가들의 작품은 그 시대를 잘 그려놓았다. 피자에 치즈가 녹아있듯이 쫀득하게 시대상이 녹아있다. 나는 십 대까지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내가 나고 자란 칠팔십 년대의 농촌을 기억을 더듬어서 그려보려 한다.


  우리 엄마는 종갓집 맏며느리가 딸만 낳아 기르다 보니 면목이 없어서 산후조리도 변변히 못하고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들로 나가서 일을 해야 했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큰애가 동생들을 기르다시피 하고 부모님은 일을 하셔야만 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아이였을 때는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들에 가셔서 일을 하다가 끼니때가 되면 돌아오셔서 잠시 생사를 확인하고 또 들에 나가시는 게 일상이었다. 그 시절엔 앙골 돗자리를 방바닥에 깔고 살아서 홀로 남은 아이는 손톱에 돗자리 버껴진게 껴서 손톱이 몇 번을 빠지다가 더 이상 새로 나지 않게 되어 나는 손톱 두 개가 없다. 그야말로 우리에 갇힌 어린아이는 그래도 생명엔 지장이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주 어린 시절엔 그렇게 보냈다.


  좀 자라면 농부의 자식은 준 농부가 된다. 보리를 베고 모를 심고 밭에서 김을 고 목화를 따고 벼를 베고 벼를 말리고 농부의 일 년 농사를 빠짐없이 전 과정을 함께한다. 봄이면 논둑 밭둑에서 나물을 캐고 산에서 고사리 버섯을  따고 여름이면 냇가에서 고동도 잡고 겨울이 되기 전에는 산에서 겨울 동안 사용할 땔감을 했다. 집에서만 부모님 일손을 거들었던 게 아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학교차원에서 초등학생인 우리들은 어느 동네 보리를 베러 낫을 들고 갔었고 모내기도 직접 동원되어 가서 했다. 적극적으로 기계화가 되기 전이라 고사리손을 빌려서 그렇게 일을 했다. 온 동네 아이들이 모두 당연하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힘들다거나 안 하겠다거나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그러다 고학년이 되면서 소재지의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게 되어 그 아이들은 전혀 그런 일을 안 하고 산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준 농부는 농사만 거들었던 게 아니다. 짬짬이  동네 아이들 모여서 기진맥진하도록 뛰어놀았다. 자치기 핀치기 고무줄놀이 야구 축구 딱지치기 팽이 돌리기 연날리기 안 해본 놀이가 없었다. 살맛 나는 세상이었다. 한 여름밤엔 마당에 모기향 피워놓고 평상 위에서 팥죽 옥수수 원 없이 먹으면서 지냈다. 밤이 깊어지면 마을을 가로지르는 냇가의 다리 밑에서 동네 여자들이 다 모여서 목욕을 했었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지게 반짝거렸고 땅 위에서는 반딧불이 질세라 수없이 반짝거렸다. 름이면 매미 개구리들의 합창이 끊이지 않았고 가을 낮엔 고추잠자리 떼가  날아다니고 밤이면 귀뚜라미들이 합창을 했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모든 먹거리는 자급자족했었던 것 같다. 집집마다 가축은 대여섯 종류를 길렀다. 소 돼지 염소 오리 닭 토기 개 고양이 거의 대부분의 집에서 이렇게 길렀었다. 가축 사료나 먹이 주는 것도 아이들의 몫이었다. 소나 염소는 목에 줄을 달아서 풀이 많은 곳에 묶어두고 해가 저물면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게 일이었다. 대부분의 집에는 감나무 살구나무가 있었고 밭에서는 수박 참외 오이 토마토 딸기 등을 재배했다. 동네 앞에 냇가에서는 마을분 중에 한 분이 작은 배를 띄워서 아침마다 붕어를 잡아서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였다. 마을 앞 도로변과 학교에서는 때마다  벚꽃이 만발했고 뒷산에는 진달래가 가득했었다.


  하늘도 땅도 온통 내 세상이었다. 날마다 날마다 공기의 맛이 달랐다. 날마다 날마다 하늘의 색깔도 달랐다. 농촌에서 태어난 건 행운 중에 최고의 행운이었다. 굶주린 생활도 아니었고 전장에 나가야 하는 시기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처절하게 공부만 하던 시대도 아니었고 세상이 문명의 세상으로 점점 변화되어가는 시기에 태어나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푹 젖어도 보았고 최첨단 기기들을 이용한 많은 경험들도 하고 있다. 특히 아름답고 낭만이 있고 여유가 있는 농촌을 만끽할 수 있었던 나는 정말 행운아인 것 같다. 그때는 몰랐었다. 그 행복했던 시간들이 행복이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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