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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r 04. 2022

좋아지는 건지 나빠지는 건지

변화, 고향

  누구나 고향은 그냥 고향이어서 좋다. 내가 내가되기까지 고향의 모든 것들은 나의 살과 피 그리고 정신이 되어주었다. 한때 타향살이를 할 때면 엄마 얼굴보다 고향의 풍경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곤 했었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나의 그리움은 말로 다 형언하기 어렵다. 집 앞에 논을 지나 앞산에서 용맹스럽게 떠오르던 아침 해, 건넛마을과 우리 마을 사이에 식수로도 활용하기도 하는 큰 냇가 끝에 멀리 있는 바다로 저물어가던 일몰의 화려한 석양, 또 아침이면 피어오르던 물안개, 밤이면 우리 집 하늘은 별천지가 되어 반짝였 거, 봄이면 온통 뒷산이 진달래로 뒤덮였던 거,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이 그곳을 떠난 많은 시간들 속에서도 함께 살아 숨 쉬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느냐고 묻는다면 '애정'으로 산다고 답할 수 있다. 살다 보면 '애'가 증발되고 '정'만 남아서 살아지기도 한다. 외출한 '애'가 찾아오는 날도 있다고들 한다. 사람이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양한 모양의 감정들이 우리네가 사용하는 유선, 무선의 전류처럼 흐르고 있다. 그런데 유독 나는 어릴 적 뛰어놀던 내 고향이 그렇게 아름답고 좋을 수 없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내 고향을 '애정'한다. 어릴 적 함께 뛰놀던 동네 친구들도 한 덩어리로 내겐 고향이다.


  우리 동네는 대략 100여 가구가 사는 그래도 제법 큰 마을이었다. 마을을 들어서는 입구에 초등학교도 있었다. 주변 10여 개의 마을 아이들이 그 초등학교로 학교를 다녔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의 결정체가 녹아 있던 그 초등학교는  운동장 쪽에 플라타너스를 그늘 삼아 제법 큰 쉼터가 있었고 학교 건물 뒤쪽엔 다양한 돌과 나무 그리고 과학 공부를 할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 있었다. 한 때는 큰 왕릉 모양의 토끼들이 살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연못 같은 곳도 있어서 붉은색 잉어들도 살곤 했다.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마을 앞 초등학교는 주인 없는 빈 집이 되었다. 그곳에 다닐 아이들이 없어서 폐교가 된 것이다. 그런데 폐교 상태로 제법 여러 해를 지냈는데 언젠가부터는 동그란 측백나무 울타리만 남고 아무것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는 태양판으로 모두 채워졌다. 른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들의 초등학교만 변한 게 아니다. 옆 마을과 경계에 산이 있는데 그 산을 뚫고 우리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기찻길이 생겼다. 지금도 완공된 건 아니지만 높은 고가의 철길은 우리 동네를 우리 동네가 아니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거주민은 거의 일할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댐을 만들어 고향이 물속에 잠기는 경우에 비하면 그래도 다행 인지 모르지만 갈 때마다 달라지는 우리 동네는 낯설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고향이 그리워서 죽어도 고향 쪽을 향해 히곤 한다는데 고향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서 많이 속상하다.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져서 그냥 한숨만 나온다. 살다 보면 태양열 전지판은 철거해 갈 수도 있겠지만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높이 쌓아 올린 고가 철길은 답이 없다. 마치 우리 모두의 추억을 삼키는 거대한 구렁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얼굴 한가운데 깊은 상처가 난 것 같기도 하다.


  꼭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마을 턱 밑을 가로질러서 높이 쌓아 올려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도시를 정비하는 경우도 미관을 생각해서 정비하곤 하는데 시골 마을은 그렇게 경관을 해쳐서 무조건 만들어도 되는 걸까? 빠르고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미관이고 뭐고 경제성만 따져서 공사를 하고 있는 거겠지? 자연은 아름다운 우리의 자산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려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불도저를 밀어 대면되는 게 아니다. 도심 한가운데 한옥마을이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듯이 아름다운 농촌 풍경도 훗날 우리의 후손에게는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성장을 지켜봐 주고 기억해주 내 고향이어서도 소중하지만 농촌은 삭막한 세상에서 정서적인 산소통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런 산소통을 그렇게 마음대로 구멍 내도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들의 산소통을 구멍 내든지 말든지 그냥 안 보련다.'하고 말 일인지 모르겠다. 허리에 구멍이 난 산 등성이에서는 여전히 아침해가 뜨고 시냇가에서는 여전히 물안개가 구름이 되겠다고 위로 위로 치솟는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연은 그 자리에서 그렇게 그들의 할 일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만은 거두지 말아 달라는 호소문 같기도 하다. 그들의 움직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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