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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pr 09. 2022

감사합니다. 엄마!

  가끔 나는 생각한다. 분명히 어려운 환경의 가정에서 자랐기에 뭐든 늘 부족하였을 수 있었는데 그에 비해 난  환경을 탓하거나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없이 살아지는 게 스스로 조금은 의문이었다. 오히려 어려운 부모님을 걱정하여 학교에서 내라고 하거나 하는 필요한 걸 말씀드리지 못해서 주저하다가 어쩔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면 어쩔 수 없어서 말씀드리곤 했었다. 언젠가 동생이 얘기했다. "언니 넌 왜 코 앞에 놓이게 되면 말을 해서 부모님을 난처하게 만들었어?" '아, 그럴 수 있었겠구나!' 그 말을 듣고 뒤늦게 걱정하시는 게 걱정되어 말 못 한 내 행동이 부모님을 더 난처하게 하였겠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었다. 어쨌든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었다. 되려 부모님을 걱정했었던 게 더 컸었다.


  지금을 살아 내면서 홀로 병석에 계신 엄마를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고 속상하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내 그리움이었고 내 전부였던 우리 엄마였다. 결혼하고도 나는 내 동생이 서른 가까이 될 때까지는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늘 엄마의 손발이 되어드렸다. 집안의 대소사를 늘 셋째인 나와 상의했었고 하다못해 전등이 나가더라도 날 찾으셨으니까 그때까지는 나도 엄마도 서로 많이 기대고 살았었다. 그 후로 우리 아이들이 적극적인 학업에 전념해야 할 시기가 되자 나는 온 마음을 내 아이셋에게만 썼었다. 그래서 점점 엄마는 내게 했던 sos신호를 동생에게 했었고 지금까지 동생은 그 어느 누구보다 엄마를 위해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 전 최근에 어떤 계기가 되어 생전 당신의 마음을 내비치지 못하셨던 엄마는 내게 "널 많이 믿고 의지 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데도 죄송했다. 근 십 년이 넘도록 엄마보다 자식이 우선인 생활을 했는데 엄마 마음이 그러셨다니 죄송할 다름이었다.


  우리 네 자매는 알게 모르게 서로 든든한 울타리였었다. 그런데 병든 엄마를 위해 많이 잘하는 딸, 그렇지 못한 딸 그런 형편에 놓이게 되자 서로 미안함 아쉬움 원망 그런 감정들이 오가면서 뿌리가 흔들리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서로 뿌리를 살짝살짝 건드리는 형국에 놓이게 되었다. "나, 힘들었어, 나, 많이 힘들었어!"만 말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 많이 힘들었지?, 고생했어!" 이 말을 듣고 싶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못하고 서로 더 힘들었었다고만 말한다. 그래서 난 품 넓고 마음 따뜻한 사람을 찾는다는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표현했다. 급기야 어제는 바로 위 언니에게 생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말을 했다. "언니, 우리 둘이라도 친하게 지내자!"라고 했다. 우리 둘이라도 친하게 지내면 한 명 또 한 명도 서로 '우리'가 되어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초등학교 학생처럼 언니에게 정을 나누자고 호소했다.


  언젠가 둘째 언니에게 생뚱맞은 얘기를 들었었다. 부모님은 늘 나를 더 사랑하셨다고 한다. 의외였다. 엄마는 언니의 말처럼 늘 나를 더 많이 위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아버지는 둘째 언니를 각별히 챙기고 위하셨다. 다른 자매들도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 당사자는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음식도 잘 만들고 빠르고 귄(매력)이 줄줄 넘치는 언니라 누구라도 사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우리 둘째 언니였다. 그런데 오십이 넘은 언니의 말은 생각 밖의 말이었다. "늘 나를 칭찬하시고 잘한다고 하셨지 그런데 공부 잘한 너를 자랑스러워하셨어" 이게 우리 둘째 언니의 설명이었다. '아,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뒤늦 언니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그럴 수 있었겠다는 생각반 언니에게 간 사랑을 누리지 못한 언니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겹쳤다.

 

  그런데 어쩌다 어제 둘째 언니의 마음의 소리 같은 말을 또 들었다. "엄마하고 통화를 하게 되면 엄마는 늘 뭐라고 하신 줄 아니? 영미는 진짜 많이 고생했다!"언니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이없게도 나는 나도 모르게 "아, 엄마가 아셨구나!"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둘째 언니의 불만은 "큰언니도 본인도 고생 안 했냐고? 너만 고생했냐고?"가 불만의 골자다. 더 당황스러운 건 나다. 특별히 고생이라고 까지 생각 안 하고 살았다고 하면서 정작 그 말을 듣자 엄마가 고맙고 감사했다. 어린 나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많이 힘들었는데 그걸 엄마는 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깊은 마음의 치유가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어린 나는 나 힘들다는 생각보다 주변 상황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상황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심하면서 부모님을 속상하게 하시는 막내 작은아버지라든지 그런 분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하는 행동을 자주 했었다. 어른이 된 나는 그 어린 나는 왜 애늙은이 같이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품곤 했다. 어쩌면 나도 어린 내가 안쓰러웠는지도 모른다. 래서 엄마의 그 말씀이 더 많이 감사한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내 마음속에는 이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행동으로 내 부모님을 욕되게 하지 말자.' 결혼해서도 결혼 전에 직장 생활할 때도 그런 마음이 내속엔 항상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생각이 알게 모르게 나를 지탱해주었을 수도 있다. 호랑이 상사로 이름난 분이 결혼을 앞두고 퇴직한 내게 말씀하셨다. "부모님께 전하세요. 잘 길러서 우리 직장에 보내주셔서 감사했다고요." 가는 내게 덕담처럼 한 말씀을 더 보태셨다. "남편 되실 분이나 시부모님 되실 분도 복 받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부담스럽고 낯 뜨거운 칭찬이었지만 칭찬에 약한 나는 그 말씀을 이십 년이 더 지난 지금도 기억하면서 그 말씀으로 힘을 받아 산다. 말 한마디가 그렇게 소중하고 중요한데 난 어제 내 동생에게 못할 말을 했다. 최근 동생한테 여러 번 겪은 누적된 속상함이 함축된 말을 해버렸다. 속상함을 나 혼자 소화하지 못하고 발설을 해서 이제 내가 더 잘못한 사람이 되었다. 미안하다. 감래 해야 된다. 내내 그 말을 한 죄를 난 감래 해야 된다. 세상 속에서 누적된 격언 같은 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이 말을 되새기는 하루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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