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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pr 13. 2022

    자아성찰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깨닫게 된다. 요즘 들어 더 많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있다. 그건 사람 사는 거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하루의 시간이 같고 태어날 때 부여받은 신체가 거의 비슷하고 대체로 일평생이 백세 내외라는 게 같아서인지 많이 다를 것 같지만 인생이 그다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게 요즘 많이 하게 된 생각이다.


  오선지에 팔 음계의 음계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간혹 불협화음을 낼 때도 있지만 오선지 위의 음계가 찾을 수 없는 먼 밖으로 튕겨져 나가지 않은 것처럼 생사를 가르는 극단적인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오선지를 뛰노는 팔 음계의 생산물은 우리들을 춤추게도 하지만 세월을 엮어가는 인생사는 그렇게 춤추게만 하지 않는다. 둔탁한 바위에 눌려 이도 저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잉여 재산을 바라는 것인지 무엇이 되고자 욕심부려서인지 우리네 인생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치는 만큼 빗나가곤 한다. 발버둥 치면서 소소하게 얻어지는 것들도 있어서 그것들은  또 발버둥 치는 자산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쉬운 말로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가 보람이나 희망보다 우리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온다. 스트레스의 부모 격인 욕심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시간과 땀 그리고 눈물이 뒤범벅되어가면서 발버둥 치면서 인생 엮간다.


  아침 낮 저녁 밤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말과 사뭇 다른 사람의 특성이 있다. 그건 사람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조석으로 다변화무쌍한 성정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람피운 사람은 또 바람을 피우고 안 좋은 습관이나 성격은 잘 안 변하는 경향이 있다. 알송 송 한 게 인생인가 보다.


  짜고 쓰고 맵고 떫고 시고, 왜 그렇게 다채로운 감각을 만들어 놓았을까? 단맛 짠맛만 갖고 있어도 제법 잘 살아갈 것 같은데 그렇게 까지 다채롭게 감각을 만들어 놓아서 뭘 어쩌겠다는 것일까? 사방을 미로처럼 만들어 놓아서 길 잃은 어린양이 되길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짠맛만 있는 줄 아니? 쓰고 맵고 떫고 신맛도 있단다. 너무 따분해하거나 너무 게으르게 살지 마라라. 오만가지 맛을 느끼면서 맛깔나게 살아보아라, 그런 걸까?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인생사, 욕망의 동물이면서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가? 외형은 바삭바삭 말라가면서 꾸깃꾸깃 구겨지기만 하는데 이렇게 노화만 급진전을 하는데 손안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뭐가 되었든 눈으로 확인해야 진짜 가짜를 판별할 수 있고 예상이나 추측으로는 당최 오해나 스트레스만 커가니 아직도 여물지 못한 나를 마주하게 된다. 얼마 전에도 건너들은 말을 통해 나 혼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만 속으로 연속 되뇌면서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을 오해했었다. 직접 대화를 나눠서 많은 부분 오해를 해소하면서 '그럼 그렇지!' 하면서 안도했었다.


  한때는 인생 이 회차인듯한 마음으로 삶을 관망하면서 때론 성자처럼 굴다가도 정작 내 앞에 벌어지는 소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부터 받으면서 당황스러워하는 건 여전하니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상대하는 사람들의 삶이 대동소이하다는 말과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건너 건너 들으면 오해할 수 있으니 직접 대하면 한결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제자리걸음을 할지라도 한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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