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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pr 30. 2022

여자로 산다는 것은

   마른 대지 위에 단비가 내렸다. 덕분에 초록이 온 대지 위에 넘실거린다. 비 온 뒤라 산비탈에 있는 텃밭에 오이 고추 가지 모종을 몇 개씩 심었다. 그 모종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날마다 날마다 기뻐할 것이다. 물론 그 열매를 먹게 되어 그 또한 좋겠지만 아주 조금이라 거의 애완용 식물이라고 봐야 될 정도다. 텃밭도 텃밭이지만 그 주변의 나무들이 더욱 장관이다. 여명이 비칠 때쯤 뒷산을 오르면 산속에 있는 새들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지저 기는지 감동 그 자체다. 텃밭 식물들과 낙원 같은 주변 경관 그리고 산새들이 내 생명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어쩌면 본인 나이만큼 속력을 내며 시간이 흘러간다는데 아침에 만난 그들은 그 속력을 느리게 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 제일 난감한 경험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백지상태가 되어 듣고 있는 상대에게 "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라고 확인해서 하던 말을 이어가곤 한다. 전반적인 신체의 노화는 부정할 수 없어서 인정하지만 말을 하다가 하던 말을 잊고 이러는 건 좀 많이 무섭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조심스럽게 했더니 본인들도 그런다는 거다. 눈으로 보이는 신체의 노화 못지않게 정신도 노화의 급물살을 타는 건가 보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처음 들었을 땐 그 말이 늙어가는 마당에 참 많이 위안이 됐었다. 그런데 그 말도 순간의 위로지 계속적일 수가 없다. 현실이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그 노랫말은 멜로디를 타고 어딘가로 흘러가라고 둘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 많은 경험들 위에 현명한 지혜가 싹틀 거라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내가 겪는 노화는 지혜는 바라지도 못하고 점점 텅텅 비어 가는 나를 마주하게 한다. 모든  일상은 익숙한 까닭인지 반복의 연속이고 딱히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심리적 불안 상태도 아니라 굳이 필요치 않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 지금에 이르렀는데 뜻하지 않는 사막을 만난 기분이다. 황량한 사막!


  삼십 대 때 만났던 격일로 투석하신다는 팔순 할머니의 말씀이 왜 잊히지 않는 걸까? 애 낳아 길러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 도시락 두세 개씩 싸서 보낼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는 그 말이....., 그때는 연로하신 분으로서 그러시겠거니 했다. 아이 셋 대학 보내고 내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었고 막내가 대학 입학 후 두해 정도까지는 '이 자유가 내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더니 점점 공허해지기 시작하면서 내 존재 이유를 내게 묻기 시작했다. 혼자서 건강하게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도 해보면서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체감하는 현재의 나는 황량한 사막 위를 걷는 것만 같은 게 현실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른 건 나의 위대한 업적이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행복했고 감사했다. 누가 뭐래도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우리 아이 셋을 낳고 기를 수 있었던 건 축복이다. 그럼에도 어느 때가 되니 노화가 시작되고 노화라는 게 신체적인 문제만 오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도 동반하기에 아직은 그래도 양호한 상태지만 더 노화가 심화되면 어떨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인생무상'이며 누구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면 '나'는 잠시 넣어두게 된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부분 '엄마'가 되면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부족하지만 너희를 위해서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리라.' 하는 마음으로 자식을 기른다. 생명을 잉태하여 성인이 되도록 성장시키는 건 세상에 태어나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존엄한 일이다. 성인이 되면 독립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도록 그들로부터 분리되어야 맞다. 그래서 이제는 넣어두었던 '나'를 찾아 스스로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될 것 같은데 자꾸 퇴보하는 나를 확인하게 된다. 나를 마주하고 느끼는 낯섦, 밀물처럼 밀려오는 공허함, 뜻 모를 방황 그런 나를 들여다보며 문득 측은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지금 와서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노화를 맞게 되어 당혹스러워하면서 '인생이 이렇게 저물어 가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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