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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y 06. 2022

책임, 스트레스, 콜레스테롤

책임, 생각

  어릴 적 배움이 한창일 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으면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답을 할 때가 있었다. 꼭 필요한 사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 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되라고 어린 내게 주문을 걸고 있었다. 나름의 주문에 주문을 하면서 나는 나의 나이테를 그리고 있었다. 반평생을 살아 낸 나는 자타공인 범생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인지의 여부를 평가하는 건 나의 몫이 아니라 나의 주변인의 몫이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범생이라는 평을 받기까지 심하게 성실했던 건 맞는 것 같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겠지만 나는 심하게 집착한 게 있다. '배신하지 않아야 한다.' 본인이 몸담은 곳이 그 어떤 곳이라도 지켜줘야 할 건 꼭 지켜줘야 된다는 생각이다. 시대를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딱 독립투사 감이다. 목숨까지도 기꺼 그 신의를 위해선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어 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애정 하는 사람에게 배신감을 맛볼 때가 있다. 나 또한 그런 맛을 두어 번 맛보았다. 그래도 다행히 감당할 수 있는 나이에 그런 경험을 해서 잘 이겨내고 있다. 사실은 지금도 넌더리를 내면서 가끔씩 머리를 좌우로 흔들곤 하지만 그래도 잘 이겨내고 있다.  


  배신감, 신뢰, 무책임, 책임감,, 인생을 살다 보면 걷기도 하고 뛰기도하면서 팔짝팔짝 뛰다 보면 건반 위의 파나 시를 누를 때가 있고 도나 미를 누를 때도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도 있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물정 모르는 어린 나이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기도 하곤 하지만 가도 가도 끝이 나지 않은 책임감의 연속인 그런 생활을 하다 보면 없어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 삶의 연속인 것 같은 지금을 살아내면서 어렴풋이 이 책임감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책임감을 갖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건 진정한 의미의 살아있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튼 원치 않던지 어느 때가 되면 굳이 무언가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살아 있으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상태가 온다. 그런 생각을 하면 벗어나고 싶은 책임감의 굴레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느 해변의 퇴적암처럼 어느 방앗간의 시루떡처럼 기쁨과 슬픔이 한 켜 한켜씩 쌓이면서 인생을 살아낸다. 무겁게만 느껴지는 책임들,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당면하게 되는 스트레스, 다 나쁠 것만 같은 콜레스테롤,, 피하고 싶으나 피해지지 않고 백해무익할 것만 같이 생각했던 것들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누구도 뭐라고 말하지 않으나 내가 살아낸 시간 속에서 학습하게 된 많은 것들로 인해 무색무취의 공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에 의해 내가 해야만 되는 나의 책임을 강요받곤 한다. 누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난 '나'라는 무형의 이름값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쫓기듯 그렇게 스스로를 내모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지만 어쩌면 죽기 직전 내게 '넌 멋있었다.'라는 이 한마디를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를 팽이 돌리듯이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 이 '생각'이라는 함정이 '직립 보행'을 하는 것만큼 특별한 '나'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개성, 매력, 능력을 만들어 내는 원초적 재료가 '생각'이라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이기를 강요받게 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람 노릇'을 강요받게 되는 것도 '생각'이라는 걸 하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 같다. 살아가는 시기마다 그 시기에 맞는 사람다운 면모를 강요받는다. 학생 답기를 직장에 맞는 품위를 갖추기를 자식 답기를 어른 답기를 늘 그 시기에 맞는 모습을 갖추기를 권유받는다. 그 무게를 힘겨워하면서 벼텨낸다. 하지만 병든 늙은 환자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직 건강을 되찾기를 기원할 뿐이다. 책임이 점점 사라지는 건 저금통의 저금이 점점 줄어드는 것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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