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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pr 26. 2022

딸만 있는 우리 집은 2

부모님

  언젠가 '딸만 있는 우리 집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아마도 설 명절을 보내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고 긁적였었다. 뭐 별 특별한 위로가 되지도 않았고 어쩌면 무색무취의 그 마음을 까만 글자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지 않았나 싶다. 엄마가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병상에 계시니 딸만 있는 우리 집은 빈집이 되었었다. 엄마는 내 고향이었고 부동의 고향이 갑자기 어디론가 이동 중인 고향이 되어버렸다. 우리 집은 텅 빈 빈집이 되어 우리들이 태어난 곳이며 우리 엄마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시는 그곳은 설 명절날 보일러는 안녕한지? 수도는 동장군을 잘 견디고 있는지 안부를 살피러 들렀었다. 그때도 아버지 산소를 들러서 오는데 알 수 없는 맑은 물이 눈에서 주룩주룩 흘렀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애써보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늘이 없어진 것 같은 마음이 들면서 집에 있으면 지붕  없는 집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갖았었다. 살아계실 때는 그저 공기처럼 당연하게만 생각했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야 내게 어떤 분이셨는지 깨닫게 되었었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어언 삼십 년이 훌쩍 넘었다. 종손의 장남으로 간절히 아들을 원하셨는데 그 뜻을 못 이루고 딸 넷의 아버지로 세상을 하직하신 것이다. 내가 성년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애달프게 그리워하기보다 홀로 남아 자식들을 책임지시려는 굳은 의지 하나로 버티시는 엄마를 더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앉으나 서나 우리 엄마 걱정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아버지는 늘 산소에 계신 분이라는 생각을 하기까지 했었다.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작년부터 보고 싶고 그리웠다.


  어제가 우리 아버지 기일이었다. 엄마가 병원에 계시고 처음 맞는 아버지 기일은 한 달 전부터 어떻게 지내야 하나 걱정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았지 속으로 정을 하고 있는데 작은언니가 먼저 어떻게 할 건지 물어왔다. 그러면서 본인 생각을 말했다. 생각해보지 못한 말을 듣고 시간을 갖다가 큰언니에게 물었다. 그래도 조금은 더 인간적인 대답을 듣고 엄마 병원을 날마다 다니는 동생과 함께 걱정을 했었다. 홀로 다양한 생각을 하다가 가장 무난하면서 마음을 담아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하는 격식을 차려드리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빈집에서 나 홀로 제사상을 차리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아버지 산소를 찾아서 생전에 아버지께서 좋아하신 음식을 준비해서 술 한잔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주일 전에 아버지 사위이자 남편에게 내가 생각하는 계획을 말했다. 좋은 생각이라고 내 의견을 지지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남편과 둘이서 음식을 준비해서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평소에는 그 시간쯤에 제사를 지냈을 것 같은 시간에 딸 사위 모두 모인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고 아버지를 기억하는 날이기를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구구한 내 마음을 다 꺼내놓지 못하고 긍정적이면서 부드러운 글을 올리고 말았다. 생전에 아들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었는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아버지가 일어나셔서 무슨 말씀이라도 하실 것만 같았다. 아들이 없다고 제사를 안 지낼 수 없지 않겠냐고? 그렇게 아들을 원하셨는데 당신 걱정처럼 딸 밖에 없어서 제사상도 못 받아볼 뻔하지 않았냐고? 아버지 걱정이 그냥 걱정이 아니지 않았잖냐고? 아버지께서 하실법한 말을 그곳에 적고 싶었으나 아버지를 기리는 날이었으면 한다는 간결한 글을 올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아버지, 사랑합니다. 보고 싶어요.'를 하고 또 해보았다.



  세상을 살아내면서 난 '역지사지'라는 글귀를 자주 떠올리곤 한다. 직장을 다닐 때도 후배가 생기면 그들을 보면서 내가 후배의 입장일 때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그들과 함께했었고 남편을 만나 결혼을 결정할 때도 '남편도 나의 부족한 부분까지 사랑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그래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고 아이들을 기르면서도 '내가 아이들이었었다면 어떤 마음일까?'를 문득문득 생각하곤 했었다. '내가 아버지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딸자식이지만 우리 셋째가 그래도 나를 찾아왔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도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나!', '너 하나로 충분하다. 고맙구나!'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다. 비록 성대하지는 않지만 부디 아버지께서 내가 추측하는 것처럼 생각해주시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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