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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y 21. 2022

민낯

관계, 존중

  소나기가 왔었다. 두 시간 정도 거리에서 차를 탈 때는 비가 안 왔는데 우리 집 근처의 도로는 비에 젖어 있었다. 단비가 내린 그 촉촉함을 느껴보려고 까만 도로를 힘주어 걸어보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텃밭을 향해 갔다. 가는 길에서 만난 나무들은 맑은 은구슬을 이어링처럼 매달고 있었다. 밤사이 내린 소나기가 나뭇가지마다 아직 머무르고 있었다. 동이 트면 몇 번은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다가 햇볕에게 먹히고 말 것이다. 그래도 그 아름다움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눈에서는 쉽게 멀어졌어도 마음속에 깊이 담아둔 그 아름다움은 언제까지라도 영롱하게 빛날 것이다. 처음 본 그 모습 그대로


  사람들은 옷을 입는다. 예쁘고 덜 예쁘고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가 옷을 입는다. 옷을 입는 이유는 외부 기후에 본인을 보호하려는 목적과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옷을 입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느 때가 되면 여자들은 화장을 한다. 그 또한 피부를 보호하려는 목적과 예쁘게 보이려는 이유에서 그럴 것이다. 사람들만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거의 모든 것들도 포장이라는 이름으로 외관을 꾸민다. 그 사물의 기능 그 이상으로 디자인과 포장은 그 사물의 가치를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하늘 높이 치솟게 한다.


  밖으로 보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여 사람들의 선택의 방향을 좌우하게 한다. 그런데 사람의 외관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조금의 포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막역하다. 허물이 없다. 긍정적인 친근함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그 친근감이 당사자의 완급 조절 실패로 만만하다, 무례하다로 금세 바뀐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급기야는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 입히는 경우가 왕왕 있게 된다.


  여러 단어들 중에 '설렘'이란 단어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약간이라도 설렌다.  설렘은 잔잔한 호수에 바람이 노닐고 있을 때 햇빛이 비추게 되면 금빛 물결이 찰랑이게 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 사람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현상 같은 것이다. 설렘은 내속에 생명이 숨 쉰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그런 오묘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설렘과 비슷한 좋은 인상을 갖은 단어가 있다. 수줍음이다. 수줍다는 감정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의 겸손함을 포함한 단어가 아닌가 한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민낯 그대가 더 예쁘게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수줍음을 갖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수줍었으면 좋겠다. 수줍지 않은 사람은 제발 화장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수줍음 없는 민낯으로 선을 넘는 걸 마치 친근함이라고 생각하여 마음대로 상처를 내는 무례함을 사양한다. 감당하지 못할 가깝다고 생각하는 그  가까움, 서먹하여도 좋다. 적당한 거리감을 더 권하고 싶다. 부부간 부자간 형제간 친구 간 그 모든 관계에서 꼭 필요한 건 서로에게 어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 아닌가 한다. 더 사무적인 단어로 표현하자면 '존중' 그 존중이라는 화장이나 옷을 입고 상대를 대하라는 것이다. 가깝다고 시도 때도 없이 벌거숭이로 다가오지 말라는 것이다.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옷을 입는다.



  아쉽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 중에 속상할 정도로 무례한 사람이 있다. 가까울수록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대면할 때마다 피로감을 느끼고 제발 내 앞에서만큼은 민낯으로 다가서지 말기를 원하는 나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난 그 사람을 대하면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이 생기는데 참고 대한다. 그때마다 두 눈을 꼭 감고 감래 하게 되는 내가 싫다. 아니,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그만 이해하고 싶고 그만 눈 감아주고 싶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다. 부탁한다. 대놓고 존중이란 단어를 품고 오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다. 그냥 좀 두껍다 싶게 화장을 하거나 좀 덥다 싶게 두꺼운 옷을 입고 나를 만나길 바랄 뿐이다. 더 이상 당신의 민낯을 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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